'프랑소아 피노 컬렉션 : Agony And Ecstasy'

2011. 10. 6. 13:19잡문/돌아다니다

'프랑소아 피노 컬렉션 : Agony And Ecstasy'


흔한 기회는 아닙니다. 생존 작가들 중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데미안 허스트, 제프 쿤스, 무라카미 다카시, 신디 셔먼의 작품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것도 흔치 않은데, 대중에 노출될 일이 적은 개인 소장품의 전시회기에 흔한 경우는 아닙니다. 송은 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리고 있는 '프랑소아 피노 컬렉션 : Agony And Ecstasy'에 다녀왔습니다.

(본 게시물 사진들 중 별도 표기한 경우 외 모든 사진은 송은 아트스페이스가 제공하였으며 모든 저작권은 송은 아트스페이스에 있습니다. 전시장 내부에선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이번 전시회에는 다양한 럭셔리, 하이패션 브랜드들을 거느리고 있는 거대그룹 PPR의 수장이며, 2000여점의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갑Power부 프랑소아 피노(François Pinault)회장의 개인 소장품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23점의 작품들이 전시되며 국내에선 최초로 공개되는 작품들이 다수입니다. 컨텐츠도 컨텐츠지만, 전시회를 위해 피노 회장과 제프 쿤스가 직접 우리나라를 찾았을 정도로 힘을 준 전시회입니다. 


미국 현대미술의 총아죠. 제프 쿤스(Jeff Koons)도 왔었습니다. 수입이 워낙 시원한 만큼 옷태가 장난이 아닙니다.


3층에 걸쳐 각 작가별 4개의 섹션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사진은 없습니다만 1층에는 무라카미 다카시(村上 隆)의 작품이 있습니다. 각 층마다 이해를 도와주시는 분들께서 친절하고 깊이있는 해설을 더해주시니, 편안하게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물론 아무런 기의 해설 없이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관람하는 것도 좋습니다. 



Untitled, Hollywood Portraits Series 2000, Color print, 76.2 × 50.8 cm
Courtesy the Artist and Metro Pictures © Cindy Sherman

신디 셔먼(Cindy Sherman)은 자기 자신을 모델로 하되 다양한 인간상들을 투영하며 동시에 모호한 인상을 주길 원하는 사진작가입니다. 작품 중 헐리우드 연작과 발렌시아가 연작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하나의 관념적 인물상에 과장을 더해 표현한 사진인 만큼 벽에 걸어두면 좀 웃길 것 같긴 합니다. 본 작품 같은 경우, 캘리포니아의 뜨거운 햇살이 남긴 선글라스 자국을 표현한 것 같습니다. 이창훈 선생님의 '빼트맨~'은 갑자기 왜 생각날까요?


Untitled, Balenciaga Series, 2007–2008, Color photograph, 153.7 × 121.9 cm
Courtesy the Artist and Metro Pictures © Cindy Sherman

발렌시아가(Balenciaga)의 의뢰로 제작한 시리즈도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사진의 인물은 모두 신디 셔먼이며 다중 촬영 후 합성하여 제작되었습니다. 참고로 발렌시아가도 PPR 그룹의 산하 브랜드입니다. 또 참고로 제가 발렌시아가의 라이더 재킷을 참 좋아하오니 이 글을 보시는 분들 중 수입이 시원하신 분께서 하나 투척해주시면 그 분을 제 종교로 삼고 곤경해 드리겠습니다.


Dutch Couple, 2007, Oil on canvas, 274.3 × 213.4 cm
All art works ⓒ Jeff Koons, All rights reserved

키치를 통해 오늘날의 미국을 보여주고 있는, 다들 그렇게 말하지만 제가 보기엔 그냥 아무 생각없이 만든 것 같은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는 제프 쿤스의 작품들 중 3점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전시장에서 얼핏 보고 프린트물인 줄 알았는데 다시보니 유화였군요. 도대체 어디가 유화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Bourgeois Bust – Jeff and Ilona, 1991, Marble, 113 × 71.1 × 53.3 cm
All art works ⓒ Jeff Koons, All rights reserved

로코코 풍의 장식미가 넘치는 대리석 흉상이며, 전 부인 치치올리나와 자신을 표현한 작품입니다. 참고로 치치올리나 여사는 포르노스타 출신으로 국회의원에 오르는 등 대단한 활약을 보였던 여사로 오늘날 대한민국의 30~40대에게 흐뭇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분입니다. 아무튼 이런 소재와 양식의 어긋나는 듯 보이는 만남이 키치의 묘미 중 하나입니다.

참고로 전시장에는 보호 케이스 없이 공개되어 있으니 보다 가깝게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회화, 조각 작품들도 다들 보호장치 없이 공개되어 있기에 보다 농밀하게 느껴보실 수 있습니다. 다만 현대미술을 흠모하는 마음에 과하게 가까이 하시다 떨어져 깨지기라도 하면 삼대가 피라미드 건설 노동자로 일하게 되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사오니 적당히 아껴주세요.


Matthew, Mark, Luke and John, 1994 ‒2003, Steel, glass and formaldehyde solution containing, cows/bulls heads and mixed media, Each aquarium: 45.7 × 91.4 × 45.7 cm
Photographed by Stephen White © Damien Hirst and Science Ltd. All rights reserved, DACS 2011 

아마도 국내에선 최초로 공개되는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수의 사도들 중 읽고 씀이 가능했던, 그렇기에 각자의 신약성서를 남겼던 마테, 마가, 누가, 요한을 소재로 한 포르말린 소대가리 작품입니다. 데미안 허스트가 늘 관심을 두고 있는 죽음, 배치, 종교가 담겨 있습니다. 징그럽고 기괴합니다만, 우리가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대상들과의 이질감이 주는 숭고미가 근사합니다. 집이 좀 넓으면, 테이블 받침으로 쓰면 좋을 것 같았어요.

다만 이 것도 역시 맨바닥에 보호없이 공개되어 있사오니 무심결에 발로 차  유리라도 깨지는 날에는 카이지처럼 지하 노역장으로 끌려갈 수 있습니다. 각별한 주의를 요합니다.


The Kiss of Death, 2005, Perspex, steel, bull’s heart, dagger, silver and 5% formaldehyde solution, 91.4 × 61 × 25.4 cm
Photo : Prudence Cuming Associates Ltd © Damien Hirst and Science Ltd. All rights reserved, DACS 2011 

사진가 분이 무슨 의도로 화벨을 안맞추고 찍으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 작품도 앞선 소대가리 작품과 마찬가지로 투명한 아크릴 케이스에 담긴 포르말린 박제입니다. 소의 심장에 멋진 단검을 꽂고 은 철조망을 감아두었습니다. 죽음의 숭고함을 표현하려는 의도가 담겼다고 합니다. 뭐 기의야 어쨌든 간에 이건 딱 봐도 굉장히 멋있습니다. 티셔츠에 그려놓으면 마초 라이더 간지가 폭포처럼 좔좔 흐를 것 같았습니다. 

참고로 데미안 허스트는 포르말린 박제 작품을 만들 때 소 한마리를 통째로 사다두고 고민하다 그 중에서 필요한 부분만을 추려 제작을 진행한다고 합니다. 나머지 부분은……. 동네 파티라도 열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무튼 고기가 많이 있을 터이니 데미안 허스트 옆 집에 살고 싶습니다.  


Bad News, 2009,Oil on canvas (triptych), 230 × 154 × 3 cm

Photographed by Prudence Cuming Associates © Damien Hirst and Science Ltd. All rights reserved, DACS 2011


클래쉬의 보컬 조 스트러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인상을 받아 제작하게 된 작품입니다. 평소 그와 절친하게 지내던 데미안 허스트인 만큼 충격이 컸을 터이며, 죽음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그이기에 그 인상은 더 컸을 것 같습니다. 이 작품 외에도 동료 작가의 죽음에 인상을 받아 그린 작품도 이번 전시회에 공개되어 있었습니다. 

이미 느끼시는 분들도 있겠습니다만, 컨텐츠 외 형식면에서도 인상적입니다. 로만 카톨릭의 삼면제단화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동시에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회화에서 찾을 수 있는 요소들이 많이 보입니다. 허스트의 적은 회화작품들 중에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영향이 많이 느껴지는 작품들이 다수입니다. 


Dead Ends Died Out, Examined, 1993, MDF, glass and cigarette butts, 152.4 x 243.8 x 10.1 cm

Photographed by Prudence Cumming Associates © Damien Hirst and Science Ltd. All rights reserved, DACS 2011 

단 하나도 동일할 수 없는 담배 꽁초들의 배열을 통해서 죽음으로 향하고 있는 삶의 다양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입니다. 케이스 시리즈에 속합니다……. 만 제겐 이런 이야기보다 제작과정이 흥미로웠습니다. 전에 이 작품을 사진으로 보고 움직이는 담배 꽁초들을 도대체 어떻게 이동시키는지가 궁금했었는데, 알고보니 케이스만 움직이며 담배 꽁초는 매번 전시 때마다 새롭게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즉, 케이스 걸어두고 그 자리에서 스탭들이 담배를 빡빡 피워 안을 채우는 것입니다. 해설하시는 분께서는 담배를 피우는 기계를 사용한다고는 들었습니다만 그딴 기괴한 기계가 있을리는 없을 것 같고, 침 자국이 있거나 루즈가 뭍은 것이 있는 점으로 보아 아무래도 다들 피운 담배인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렇다면 수십억의 가치를 가진 '물질적인 대상'은 아크릴과 합판으로 만든 케이스 뿐이란 것인데……. 역시 현대미술에는 오묘한 섭리가 있습니다. 제가 모르며 당분간은 알 리도 없는 그 무엇이 있나 봅니다.

본문에서 소개한 작품들 외에도 다양한 작품들이 있습니다. 특히 무라카미 다카시의 작품은 본문에 하나도 안 적었습니다. 제가 누락시킨 것이 아니라 보도자료에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강력한 인상을 주는 작품이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의 작품들 중 'Hiropon', 'My Lonesome Cowboy', 'Cream' 작품이 이번에 전시되오니 그 쇼킹함을 느껴보시려면 전시장을 직접 찾아보시면 됩니다. 참고로 가격을 알면 더 쇼킹하실 겁니다.


안에선 사진을 못 찍다보니 오래간만에 나온 제가 찍은 사진입니다. 갤러리 1층에는 카페테라스가 개설되어 있사오니 천천히 관람하시고 나와 현대미술의 오묘한 세계에 대해 담소를 나누어 보시기에 좋을 겁니다. 다만 같이 가실 여성분이 없을 것이 뻔하오니 혼자서 에스프레소나 드시고 오세요. 이젠 새삼스럽게 외로울리도 없지 않습니까.

청담동 송은 아트 스페이스에서 11월 19일까지 열립니다. 압구정 겔러리아 백화점에서 청담 사거리 쪽으로 쭉 걸어가시다 언덕 넘어에 있는 프라다 매장 다음 골목으로 꺽어 들어가시면 됩니다. 건물이 크니 쉽게 찾으실 수 있습니다. 오전 열한시 부터 오후 일곱시까지 개관하며 관람료는 무료입니다. 쟁쟁한 작품들이 걸리는 만큼 찾아 후회할 전시회는 아니오니, 꼭 시간 내어 찾아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