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25카츠

2011. 4. 2. 22:02잡문/돌아다니다


 여유롭고 처량한 백수의 하오를 즐기다가 주유소8님의 리뷰를 읽고 닥쳐온 용맹한 허기를 참지 못하고 출동했다. 위치는 청주 성안길. 맥도널드 근방 작은 나이키 매장 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있다. 골목에 숨어있다 보니 찾기 편안한 편은 아니다.

  덤으로, 이 자리를 빌어 홍양에게 감사드린다. 급 위꼴은 받았으나 실업자기에 돈이 모자라 천오백원만 보내달라 하니 바로 오천원을 쏴줬다. 나 정도의 인물에게 당연한 대접이긴 하다만 형식적인 감사 인사를 보낸다. 


 실내. 별 감흥은 없으나 요즘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가 너무 만연하다 보니 이런 낙낙한 풍이 오히려 이채롭게 보인다.

 사족으로, 요즘엔 이 동네에도 미니멀-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가 너무 많다. 물론 투자비용 대비 가장 세련된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는 장점이 있다만, 너무 범람하다 보니 처음 접할 때의 신선함이 고갈되어 버렸다. 


 젓가락. 잘 보니 자개가 들어가 있었다. 예쁘다. 하나 있으면 좋으리라 싶었다.

 아래 닫은 메뉴는 말 그대로 메뉴. 볼 사람만 열어 보셔요.
 


 돈까스에 앞서 양배추 채가 나온다. 테이블마다 설명서가 있으니, 적절한 소스를 언져 비비면 된다. 양배추는 하얀 통이다. 

 양배추 소스는 유자 폰즈인데 유자 향이 물씬 느껴진다. 맛도 약간 쌉쌀하면서도 향긋하니, '폰즈' 보다는 '유자' 에 가깝다. 이거 제법 근사하다. 보통 이런 류의 식당에서 나오는 키위-마요네즈 소스와 비견할 것이 아니다.  

 덤으로 양배추, 미소 시루, 밥은 리필된다. 당연하고 훈훈하다.
 


 테이블 마다 올려져 있는 안내서. 실증은 못했다만, 진천의 쌀과 수입 미소 된장을 사용한다. 그리고 보시다시피 25카츠의 돈까스는 일반적인 일식 돈까스와는 그 공법이 다르다. 이하의 사진을 보면 명확하게 보인다.  

 드디어 등장한 본식. 약간의 절임류와 소스를 비빌 무즙이 나온다. 국와 밥은 기본. 돈까스에 들어가기 앞서 미소 시루를 맛보면, 이거 참 좋다. 저렴한 식당의 미소 시루는 대개 '간 맛' 을 기본으로 하여 그 본연의 된장맛이 약한데, 이 쪽은 심심하면서도 잔잔한 미소의 맛이 잘 살아있다. 주보다는 부가 되는 국이다 보니 이 정도 간이 적절하고, 전체 식사에 잘 어울린다. 아무튼 25카츠의 미소 시루는 근사하다.

 돈까스용 소스는 일반의 일식 돈까스 소스와 간장 베이스의 소스가 나온다. 기본 돈까스 소스는 흔한 기성품은 아닌 듯, 그 맛이 약간 다르다. 덜 짜고, 중후한 편.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좋았다. 간장 소스는 무즙과 섞어서 먹는데, 마치 연한 왜간장에 찍어 먹는 맛이다. 이채롭고 나름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보다 명료한 맛을 느낄 수 있기에, 돈까스 자체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 다만 그다지 손이 자주 가지는 않았다. 짠 맛이 집중적이기에 단조로운 감이 있고, 일반적인 소스의 뭉근한 식감이 없어 입 안 만족도가 좀 떨어졌다. 다만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감상이니, 좋아하는 사람은 충분히 좋아할 것이다.  

 돈까스에는 메뉴 이름이 적힌 국기봉이 꽂혀 있다. 일단 시각적으로 말랑하게 다가오는 재미가 있고, 서버가 '자기가 뭘 들고 가는지를' 혼동하지 않게 하는 기능적인 의미가 있어 보인다. 치즈까스과 같이 확연히 다른 경우가 아니라면 돈까스는 썰어 놓아도 생긴 것이 거기서 거기기에, 간단하지만 근사한 아이디어다.  
 


  드디어 돈까스를 맛 본다. 이 날 주문한 것은 기본 메뉴.
 
 한때나마 돈까스 업계에 적을 두었던 입장에서 보면(그래봐야 돈까스 집 주방 시다) 일단 튀김은 근사하다. 요런 빛깔과 입자가 나오게 하려면 튀김기 기름을 적어도 이틀에 한번은 갈아줘야 하는데, 관리가 잘 되고 있는 듯 보인다. 맛 안간 기름으로 180도에서 3분 언저리 튀기면 요렇게 나온다. 외양 뿐만 아니라 내용도 준수하니, 바삭하면서도 기름에 젖지 않아 식감이 참 좋다. 일식 돈까스를 먹다보면 대체적으로 튀김 입자가 하드한 곳과 소프트한 곳으로 나뉘는데, 25카츠의 돈까스는 전자에 가깝다. '파사삭' 보다는 '와자작' 에 가깝다. 이러나 저러나 튀김은 참 좋다.

 속을 들여다 보자. 이것이 이 집의 특별한 공법이다. 일반적인 일식 돈까스의 두툼한 고기와는 달리, 얇게 저민 고기 레이어로 적층하였다. 이 겹이 25층 이상이 된다 하여 가게 이름이 '25' 카츠다. 다만 막상 세어보니 15층 정도이니…… 뭐 겹친 것도 있고 내가 빠트려 셈한 것도 있을지어니 넘어간다. 이러나 저러나 이런 공법은 참신하게 다가온다. 앞에서 본 매뉴얼에 적힌 정도의 장점이 있을 것이고, 얇은 층으로 되어 있다보니 열이 균일하게 스며들어 안쪽까지 제대로 익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각 층마다 시즈닝을 해둔다면 보다 향기롭거나 특색있는 맛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아마도 후추, 마늘, 고추 카츠는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 같다).  

 표기가 안되어 있어 히레(안심) 인지 로스(등심) 인지는 모르겠다만, 맛은 히레에 가깝다. 부드러우면서도 약간은 푸석한 맛이다. 씹히는 식감 보다는 퍼지는 만족감에 집중한 맛이다. 이는 비단 고기 부위만으로 결정된다기 보다는, 특별한 공법이 작용하는 바도 있을 것이다. 고기 색에서 알 수 있다시피 안쪽까지 균일하게 익은, '웰 돈 혹은 완숙' 에 가깝다. 보통의 일식 돈까스는 두꺼운 고기를 '미디움-웰 돈' 으로 익혀 전체적으로 고기 조직이 살아있기에 그 조직감과 육즙이 촉촉 + 탱글하게 살아있는 반면에, 이쪽은 다층의 얇은 레이어로 되어 있기에 조직은 보다 잘게 나누어져 있고, 완전히 익혀진다. 덕분에 입 속에서 부드럽게 흩어지게 된다. 결국 로스로도 히레의 맛을 낼 수 있는 공법이다.

 게다가 이런 공법을 위한 밑 준비도 이런 맛을 내는데 작용할 것이다. 대량으로 이와 같이 고기를 얇게 썰기 위해서는 냉동을 한 뒤 기계로 작업해야 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완전 냉동되었다 해동되는 고기는 조직이 생고기에 비해 풀어지고, 깨질 것이다. 정확한 속사정을 알 수 없기에 속단할 수는 없으나, 아마도 이러한 준비 과정도 결과적인 식감의 조성에 한 축으로 작용했으리라 생각한다.

 사진으로 보일 지 모르겠는데, 절단면을 보면 약간의 후추 시즈닝이 되어 있다. 이런 세심한 밑 간은 전체적인 맛에서 얼마만큼의 영향력을차지하더라도, 하물며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더라도 정성이 들어간 음식을 먹는다는 심리적인 만족 면에서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이런 준비 때문인지, 당연하겠지만 고기 비린내나 잡내는 느껴지지 않는다. 

 주관이 너무나 크게 작용하는 만큼 맛이 없다, 있다로 나누지는 못하겠다. 전반적인 완성도에 있어 등급이 떨어진다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준수하다. 다만 그저 이런 식감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나처럼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뿐이다. 어디까지나 취향에 따라 호, 불호가 갈리게 되는 맛이다. 직접 잡숴 보시고 결정하시라.


 지도를 첨부하려 했는데 더 찾아가기 힘들어질 것 같다. 아주 찾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성안길 지하상가 방향, 맥도날드 부근의 나이키 매장(큰 매장 말고 작은 매장) 옆 골목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있다. 쌈밥집 골목 다음이며, 맞은 편에 올리브 영이 있다. 성안길을 따라가다가도 보이니 조금만 찾아보자.

 갱끼돈이 판을 크게 점령하고 컬트적 지지를 받는 공원당이 영향력을 발휘하던, 비교적 평화롭던 시내 일식 돈까스 계가 요즘 심상치 않다. 곧 하코야 돈까스도 생긴다. 일식 돈까스 참 좋아하는 내게 근사한 판세 변화다.
 
 하지만 다음 주 부터 청주를 떠나니……. 

P.S. 이걸 뭐라고 읽어야 하나? '이십오카츠' 이거나 'Twenty Five Katsu' 거나 '니쥬고가츠' 중 하나일 터인데……. 아마도 3안일 것 같긴 하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