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이야기(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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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온 사람들이 함께 먹는 식당이 필요하다.
(사진은 본문과 전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속초 만석닭강정의 사진입니다. 참고로 이 닭강정집이 닭강정계의 원조라고 합니다. 뭐, 그렇다구요.) 혼자 온 사람들이 함께 먹는 식당이 필요하다. 작년 어느 추운 겨울날에 있었던 일이다. 홍대에서 일이 끝났기에 홀로 조폭떡볶이에서 떡볶이를 먹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집이 늘 그렇듯 앉을 자리가 부족한 상황이었다. 어느 새초롬하게 생긴 아가씨가 내 테이블에 맞은편에 앉았다. 아가씨는 아무 말도 없이 앉아 자신의 떡볶이를 먹기 시작했고, 난 “조폭 되게 좋아하시나봐요? 혼자 오셨네요?” 라며 말을 걸었다. 추위에 굳은 아가씨의 표정이 풀리고 “가까운 곳에 사는데 야식이 땡기면 와요.”란 말이 돌아왔다. 그리고 식사 내내 대화가 이어졌다. 서로가 먹을 오뎅국물을 받아오고..
2013.11.21 -
야설01. 잊지 못할 그 엉덩이
금요일 저녁에 만난 그녀, 한 열 달 만에 만난 것 같다. 여전히 잘 웃고 여전히 건강해 보였다. 부쩍 쌀쌀해진 날씨라며 후드 집업을 걸쳤지만 여름의 끝자락이 가시지 않았는지 금요일 밤의 이태원에선 무어라도 보여줘야 한다는 의지의 표현인지 건강한 파란색 런닝 숏츠를 입고 나왔다. 괜히 투덜거렸다. “넌 나이가 몇 개인데 아직도 그러고 다니냐?” 그녀는 “난 이게 제일 편하던데 뭐.” 수수한 웃음은 변함이 없었다. 사실 내게도 그게 제일 좋아. 건강한데 가끔은 야하기까지 하니까. 1차는 맥주, 2차는 맥주, 3차는 양주. 한참을 마셨다. “어떻게 지내냐?”로 시작한 이야기는 “그딴 새끼를 왜 만나냐?” 를 거쳐 “역시 내가 제일 괜찮았지?” 까지 이어졌다. 이른 밤은 어느새 이른 새벽이 되었다. 무슨 할 ..
2013.09.12 -
지식의 체계
지식은 독립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정보는 서로에게 영향을 받고, 형성되며, 폐지된다. 그리고 이는 연관된 정보에 따라 다른 정보의 참, 거짓이 결정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특정 명제의 신빙성은 명제에 내포되어 있는 것, 명제의 질적인 수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명제의 신빙성은 연계된 지식들에 의해 결정된다. 이는 다음의 구조와 같다. 예제 1. 발견한 백조는 모두 하얗다(참) -> 모든 백조는 하얗다(참) 오스트레일리아에는 검은 백조가 있다(새롭게 등장하여 연계된 정보. 참) -> 발견한 백조는 하얗다(거짓) -> 모든 백조는 하얗다(거짓) 예제 2. 발견된 모든 포유류는 새끼를 낳는다(참) -> 알을 낳는 포유류는 없다(참) 알을 낳는 포유류 오리너구리의 발견(새롭게 등장하여 연계된 정보. ..
2011.12.28 -
村上 隆. “Homage to Yves Klein” Exhibition
내겐 '이브 클라인 블루'란 주관 개념을 만든 사람으로 기억되는 이브 클라인을 오마쥬하는 작품전이 열린다. 작가는 무려 무라카미 다카시. 맥시멀리즘의 대가인 다카시가 미니멀리즘(그 것을 표방한 것은 아니지만)의 극에 서 있는 이브 클라인에게 존경을 보낸다는 컨셉이 참 재미있다. 이하는 기사 원문. 출처는 하이프비스트. Takashi Murakami’s “Homage to Yves Klein” at Galerie Emmanuel Perrotin in Paris was wildly successful, as we were on the scene to capture the reception. You’ll notice that Murakami has carefully color-coordinated a seri..
2011.10.26 -
귀스타브 쿠르베 / Gustave Courbet
만남 혹은 "안녕하쇼 쿠르베씨"(La Rencontre, ou Bonjour Monsieur Courbet)(1854). 귀스타브 쿠르베(Jean-Désiré Gustave Courbet) "내키는 것 그 자체를 담자"가 모토였던, 회화에 지극히 단순한 방법으로 접근하려 했던 쿠르베지만 당대에는 꽤 충격적인 시도였습니다. 그 이전의 미술들을 대개 안 그랬거든요. 덕분에 오늘날 쿠르베는 회화가 고전에서 근대로 넘어가던 간절기를 연 사람으로 높게 대접받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위의 그림은 우리나라 미술 교과서에도 나오지요. 이전의 미술작품들이 특정한 메세지를 함유하고 있으며 시각적 인지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알레고리), 일종의 '문서'였다면(덕분에 도상학이란 학문도 있지요) 쿠르베가 활동하던 시기의 작품들..
2011.07.30 -
민둥산에서 하룻밤을 보내다 불새를 만났다. 디즈니의 판타지아 시리즈
순항하던 디즈니사(社)는 도널드와 구피에 밀려 쇠락해가던 미키의 인기를 되살려보려 고민하다, 미키를 주연으로 한 슬랩스틱 코미디 단편의 제작을 시도합니다. 무성영화의 그 것처럼, 음악과 영상만으로 간명한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단편이지요. 그러던 중 음악을 맡은 지휘자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Leopold Stokowski)가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이런 음악영상 단편들을 모아 하나의 극장판 영화로 만들어보자고 말이죠. 아이디어는 결과물에 대비해 본다면 '의외로' 구체화되어 갔습니다. 드디어 1940년, 2년간 1000명이 넘는 스탭이 참여하여 300만달러를 써 가며(1940년입니다) 100만장이 넘는 원화를 그려 만든 작품. 'Fantasia'가 개봉합니다. 월트 디즈니의 역사에서 가장 전위적(Avant..
2011.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