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코 카프리오 GX100 / Ricoh Caplio GX100

2011. 4. 1. 04:17잡문/이야기


(카메라를 찍은 사진이니, 당연히 이 카메라로 찍은 사진은 아니다.)

 2007년에 예판으로 구매하여 5년, 만으로는 4년을 썼다. 몇일전에 오버홀을 받다보니 풀린 나사가 많았다. 그리 험난한 환경에서 쓰지 않았음에도 어느새 기계의 긴장이 풀릴 정도로 다양한 곳에서 함께했으며, 다양한 순간들을 기록해줬다. 그 동안 메인이자 핸드폰 카메라를 제외한 유일한 카메라로 잘도 써먹었다.

 이하의 글은 전문성은 커녕 객관성도 전혀 함유하지 못한 감상이다 보니 상세한 정보를 원한다면 리코 포럼을 방문하길 권한다. 이 오래된 카메라에 관심을 가지는 분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매각 혹은 증여, 결국 방출을 앞두고 남겨두는 감상이다. 쓸 만큼 썼다. 감상을 쓸 때가 됬다.

단점

1. 대비가 쌔다. 즉 극암부와 극광부가 강하다. 중간 명암에 약하다

 GX100을 쓰면서 가장 크게 느낀 문제점. 콘트라스트가 너무 양극에 치우친다. 강한 인상을 주기에는 좋다만, 중간 계조를 제대로 표현을 못하다 보니 정교한 사진을 찍기에 어려움이 많다. 역광과 같이 밝은 곳과 어두운 곳의 차이가 클 때는 문제가 심각하다. 물론 세팅과 촬영 기술로 극복이 가능한 문제이긴 하다만, 스냅으로 찍었을 때에도 제대로 나오길 바라는 것은 무리한 기대일까? 한 때 GRD3 로 갈아타보려 생각했던 가장 큰 요인이며, 지금도 다른 카메라로 갈아타고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다.

2. 감도를 높히면 노이즈가 심하다. 400 이상은 쓰기 껄끄럽다
 ISO가 200까지는 쓸만한데, 400이 넘어가면 눈에 거슬린다. 최저인 80에서는 근사한 사진이 나오다 보니 거진 고정으로 두고 쓰게 된다. 플래시 문제와도 겹쳐 야간과 실내에서는 약한 카메라다. 

3. AF
 AF가 살짝 느리고, 광범위하게 잡는 감이 있다. 물론 일반 똑딱이와 비교하면 준수한 편이지만, 요즘 미러리스나 SLR의 그 것, 누르면 바로 잡히는 속도와 원하는 피사체만 딱 찝어내는 성능에 견주게 되면 무딘 편이다. 특히 매크로의 AF는 제대로 잡아내지도 못하는데가 상당히 느리다(접사 AF의 속도가 빨라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은). 제작자도 이를 아는지 매크로 AF는 초점 부위를 직접 설정할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이지만 이러나 저러나 MF가 쓰기에도 좋고, 재미도 좋다. 

4. 대다수의 조작이 디지털로 이루어짐
 AF 문제와도 겹친다. 촛점, 줌, 감도, 셔터 스피드를 모두 디지털 메뉴로 다루다 보니 민첩하고 세밀한 조작이 불가능하다. 게다가 만지는 맛도 덜해진다. 적어도 촛점과 셔터 스피드 정도는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아날로그 감각으로 만들어줬으면 좋으련만…….

5. 기동시간이 오래 걸린다
 SLR의 '키는 즉시 찍을 수 있는' 것에 대비하여 기동시간이 길다는 점은 참 아쉽다. 브레송 발가락도 못 만지는 실력이다만, '결정적 순간' 을 빈번하게 놓치게 된다는 점은 마음을 아프게 한다. 

6. 아주 쨍한 사진은 못찍는다
 간혹 사진들을 보다 보면 무시무시하게 명확한 사진들이 있던데, GX100으로 따라하기가 영 어렵다. 불편한 정도로 뭉그러진 사진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배일 것 같은 선예도가 나오길 기대해서도 안된다.  

7. 촛점 범위
 조리개를 최대 개방(f2.5)으로 두어도 촛점 범위가 좁은 사진이 잘 안나온다. 덕분에 배경이나 전경을 날리는 사진을 찍기가 수월치 않다. 배경은 프로필 정도의 거리 안에서 찍으면 그나마 잘 날아가는데, 전경 날리기는 참 어렵다. 

8. 광학 뷰 파인더가 없다
 덕분에 카메라 사이즈가 작아진다는 장점이 있긴 하다만, 뷰 파인더가 없다보니 세심하게 상황을 파악하기 어렵다. 그렇다 보니 LCD 창으로 볼 때의 기대와 막상 컴퓨터로 옴겨 봤을 때의 결과가 상이한 경우가 잦다. LCD 뷰 파인더가 별매로 나왔으나, 별 의미가 없어 구매를 생각해본 적도 없다. 

9. 산만한 인터페이스 
 이건 개인적인 소감인데, 각 카테고리의 분류와 설정, 버튼과의 연동 등 전반적인 인터페이스가 중구난방인 감이 있다. 이건 소니의 인터페이스가 참 좋다. 얼마전에 다루어 본 넥스는 직관적이고 명확하여 조작이 참 편리했다. 리코는 편의성 면에서 개선해야 할 점이 눈에 차인다.  

10. 병신같은 내장 플래시
 말할 여지도 없다. 쓸 여지가 없다. 정 보조광이 필요하면 외장 플래시를 쓰자. 일반 소켓용이면 어떤 것이나 사용 가능하니, 푼 돈에 살 수 있는 예전 필카 시절의 플래시를 써보자. 

11. 병신같은 화이트 벨런스
 오토로 두었을 때 제대로 찾아내질 못한다. 프리셋도 딱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드물다. 이럴 바에는 아예 켈빈값으로 세팅이 가능하길 바라는 것은 과한 것일까?

12. 인공지능
 인공지능 전반이 저열하다. 완벽한 수동 조작이 가능하다면 인공지능에 기댈 일도 없으련만, 본질적으로 '똑딱이' 에 준하는 카메라다 보니 인공지능에 편의를 누리려 하는 부분이 많음에도 그 만족도가 많이 떨어진다.  

13. 펌웨어
 업데이트를 해도 바뀌거나 좋아지는 점이 거의 없다. 게다가 자주 있는 것도 아니다. 기대를 안하고 쓴다.

14. 비네팅
 광량이 충분히 확보된 곳이 아니면 사진 모서리의 조도가 급격하게 낮아진다. 저감도에서 더하다. 불편한 정도는 아니며 그 나름의 맛이 있기도 하여 그냥 저냥 쓴다. 
 
15. 왜곡
 광각으로 출발하는 랜즈다 보니 왜곡이 좀 심하다. 좋은 랜즈는 24mm 정도는 왜곡 없이 커버하던데, 이건 그렇지 못하다 보니 아쉬움이 남는다. 35mm 이상에서는 왜곡이 없다만, 그 만큼 노출값과 시야 범위가 좁아지다 보니 해결책은 못된다.

16. 세로 사진 인식
 이거 참 불편하다. SLR들을 보면 세로로 찍었을 시 알아서 회전을 시켜주던데, 이건 그런 편의는 제공하지 않는다. 센서 하나만 달아주면 되는 문제다 보니 아쉬움이 크다. 쓰는 컴퓨터가 많이 느리다 보니, 복사 후 일일이 로테이트 시켜주려면 시간을 꽤 잡아먹는다.

17. 로고

 개인적인 취향인 감이 크긴 하다만 회사명, 브랜드 명, 기종 명이 여기저기에 나누어 적혀 있고, 폰트도 다 달라 중구난방인 감이 있다. 한 쪽으로 몰거나, 구조적 통일이 필요하다.

장점

1. 될 건 다 된다 

 다양한 부분에서 설정과 조작 가능하다. 불편이 따르긴 하다만, 수동 카메라를 다루는 감각으로도 충분히 다룰 수 있다. 이에 준하여 표현의 범위가 충분히 넓기에, 원하는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확률이 높다.

2. 특유의 색감
 아시다시피 각 카메라 브랜드마다 특유의 색감이 있는데, 리코도 나름의 개성이 충만하다. 말이 좀 이상한데, 심심한게 리코의 개성이다. 과장된 감 없이 담백하면서도 명징하다. 동시에 편안하다. 이런 리코 특유의 색감에 반하는 사람이 많다. 나도 이건 참 좋아한다. GX100을 쓰기 이전에 쓰던 카메라도 리코의 물건이였으며, 그 카메라를 다루며 색감에 매료되어 GX100을 택하게 되었다. 시그마의 화사한 색감도 좋아하지만, 이 쪽도 분명 매력적이다. 

3. 강력한 1cm 접사
 전륜하다. 이 정도의 접사 능력을 SLR 조합으로 갖추려면 제법 큰 지출을 각오해야 하는데, GX100은 그 것을 충분히 해낸다. 동가격대에서 접사로는 적수가 없다. 필라멘트사로 짜인 원단의 직조 방식을 명확하게 찍을 수 있는 카메라는 흔치 않다.

4. 다양한 프리셋
 똑딱이에 태생이 준하는 카메라다 보니, 나같은 라이트 유저를 위한 메뉴들이 잘 구비되어 있다. 까탈스럽지 않은 이상 그 메뉴들로도 충분히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다. 간간히 쓰는 문서 모드가 편리하고, 경사 보정 모드는 그저 신기하다. SLR 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편의가 있다.

5. 스탭 줌
 이 옵션을 켜두면, 정확하게 24, 35, 50mm 를 맞추어 줌을 들어갈 수 있다. 간단하지만 근사한 아이디어다.

6. 광각
 35mm 환산 시 24mm 부터 시작하다 보니 일반 똑딱이에 반해 광활한 영역을 사진에 담을 수 있다. 덕분에 찍기가 참 편리하고, 사진이 상쾌해진다. 바다나 산을 찍으면 카스파 프리드리히가 생각난다. 다만 가까운 거리에서 사람을 찍을 때 "찍고 있는 것 맞아" 란 말을 자주 듣는다. 

7. 마그네슘 바디의 단아한 미
 소재가 참 좋다. 단단하고 깔끔하다. 라이카 M 시리즈의 벗겨진 황동 바디나, 엡손 R-D1 의 매트 블랙같은 고전적인 맛은 덜하지만, 이쪽의 단아한 맛도 빠질 것 없다. 내구성과 경량화의 면에서도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하기에, 바디의 재질은 충분히 만족스럽다.

8. 작고 근사한 디자인
 걸고 있는 사람이 후지단 말은 자주 듣는다만, 어디가서 카메라 못생겼단 말 들은 적 없다. 일단 SLR의 1/2 정도 되는 작은 크기이기에 부담없이 휴대할 수 있다. 게다가 이런 작은 크기의 바디에 오밀조밀하게 요소들이 들어 차 있으면서도 번잡스럽지 않게 정돈되어 있다. 이고노믹에도 빠지는 점이 없어, 그립감이나 버튼 위치 등의 물리적인 조작 자체는 그 목적에 정합하고 편리하다(그저 소프트웨어의 문제일 뿐). 특별한 컨셉트를 지향하기 보다는, 카메라가 갖추어야 할 모양새를 잘 찾았다. '세련' 이란 말이 잘 어울린다. 

9. LC-1 
 LC-1 은 후속 기종인 'GX200' 의 출시와 함께 나온 랜즈 캡인데, GX100에도 호환된다. 다른 에프터 파츠들은 하나도 탐이 안났는데, 이건 사진이 뜨자 마자 매료되어 발매되자마자 구매했다. 이 뚜껑으로 인해 안 그래도 준수한 카메라의 외모가 대폭 아름다워졌다. 게다가 기능면에서도 기존의 순정 캡에 비해 일취월장했다. 성능과 미감을 모두 잡은, 그야말로 '굿 디자인' 이다. 

10. 제법 오래가는 베터리 
 완충시 '파인 3848 JPG' 로 대략 200 장 정도 찍을 수 있는 것 같다. 하루 종일 찍기에도 문제가 없다. 이 정도면 됬다. 

11. 처리 속도
 장노출로 찍을 때와 썸네일로 사진을 볼 때를 제외하면 처리 속도로 인한 불편은 없었다. RAW 처리 속도도 즉각적인 정도 까지는 아니다만 불편함을 느낄 정도로 긴 것은 아니다. 기록 속도 외에도 반응 속도도 나쁘지 않은 편. 프로세서 자체의 성능은 그다지 뛰어날 것이 없어 보이나, 소프트웨어 최적화가 잘 되어 있어 일단 켜기만 한다면 큰 불편없이 사용할 수 있다. 

12. 다양한 디스플레이 모드
 과다 노출, 실시간 계조 표시, 그리드 등의 정보를 창에 띄울 수 있어 정보를 즉각 확인하며 사진을 다룰 수 있다. 뷰 파인더가 없다는 단점, 직관적으로 상황을 알 수 없다는 단점을 수치화를 통해 많이 보완한다.

13. 확장성

 다양한 애프터 파츠들이 있고, 왠만한 유니버셜 폼 악세서리들은 다 사용 가능하다. 외장 플래시 접속부가 있어 다양한 플래시를 연동할 수 있고, 메모리 카드 없이 비디오 출력이나 컴퓨터로의 직결이 가능하기에 의욕과 광기만 있다면 스튜디오 카메라로도 활용할 수 있다. 그리고 광 각 컨버팅 랜즈, 필터 소켓용 경통 등의 다양한 파츠들이 있으니, 돈만 많다면 충분히 재미있게 써볼 수 있다.

14. 흑백
 왜 인지는 모르겠고,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감이 있긴 한데, GX100 의 흑백 사진은 그 맛이 참 근사하다. 감도를 낮춰 노이즈를 적게 하면 세련된 맛이 좋고, 감도를 높혀 노이즈를 높히면 그 구수한 맛이 남다르다. 밤에 약하단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일종의 꼼수다. 그리고 SLR에서도 찾기 힘든 GX100 만의 맛이다.

15. 중고 가격
 파츠에 따라 20~30 만원 언저리에서 거래되고 있는데, 동 가격대에서는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 수동 카메라에 입문하려면 SLR이나 미러리스로 직행하기 보다는, 이런 중고 하이엔드 류를 거쳐 작동 원리를 파악한 다음에 진행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결코 판매를 염두해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