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음악

2011. 3. 21. 23:51잡문/이야기


 이런 느낌의 음악을 참 좋아한다.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를 관통하는, 복고풍의 세련된 감각. 디스코와 재즈가 역동적인 박자 위에서 춤춘다. 유려한 스트링과 짜릿한 브라스, 달음질치는 퍼커션이 모여서 만든 경쾌한 리듬. 

 어울리는 분위기는 딱 70년대 TV 시리즈다. 그것도 디스코 풍 수사물. '샤프트' 를 위시로 한 흑인 선정 영화나, '더티 해리' 처럼 과장된 폭력이 난무하는 영화가 적합하다. 근작인 '언더커버 브라더' 나, '오스틴 파워 시리즈' 의 경우처럼 그 클리셰를 관통하는 쾌활한 분위기도 어울린다. 이러나 저러나 과장되고 상쾌한 분위기면 된다. 오랜지 색 원피스를 입은 노란 머리 뱅헤어 아가씨가 총을 겨누는 느낌. 그리고 그 총구를 막으며 아가씨에게 육중한 미소를 날리는 남자의 열린 셔츠 세 번째 단추같은 느낌.



Poupée de Cire, poupée de Son / France Gall
 얼마전에 우연히 알게 된 가수. 비디오와 오디오가 모두 우월하니, 가히 '절세미녀' 란 칭호가 아깝지 않다. 노래를 들으면 청량한 목소리도 좋고, 디스코의 시대를 정면으로 관통하고 있는 반주도 좋다.
 다만 디스코그라피가 빈약하다는 점이 아쉽다. 활동기간이 제법 됨에도 변변한 히트 앨범이 없어, 현재 주로 베스트 앨범만이 유통되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 어쩌면 일종의 '원 힛 원더' 인 아가씨(할머니?).

 여담으로 이 곡은 세르쥬 갱스부르의 곡인데, 그 느끼한 아저씨가 이런 음악을 만들고 있었을 생각을 하니 헛웃음이 나온다.



Opening theme of 'Cutie Honey' (Original 1973) / 前川陽子(마에가와 요코)
 워낙 리메이크가 많이 된 만화 영화다 보니 오프닝 테마도 다양한 버전들이 있다. 동일한 곡을 바탕으로 시대마다 다양하게 변주되었기에, 그 변화를 즐기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만 역시 오리지널이 가장 구수하다. 꽉꽉 찍어 누르는 듯한 엔카 풍 보컬이 매력적.
 아유미가 불렀던 번안 버전은 우리나라에서도 나름 센세이션을 일으켰었기에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군대있을 때 전출간 후 전입신고 겸 장기자랑에서 불렀었다. 반응은 제법 쏠쏠. 



 
Opening theme of 'Re Cutie Honey' (前川陽子 RMX) / 前川陽子
 이건 코다 쿠미가 부른 리메이크에 마에가와 요코의 보컬을 덧입힌 리믹스. Drum and Bass 풍의 곡과 촌스러운 보컬이 부조화의 매력을 발산한다. 보컬 리버브를 빼고 믹싱 벨런스를 맞췄으면 더 좋으련만, 하긴 이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
 참고로 아유미의 번안 버전은 이 코다 쿠미 버전을 기반으로 고친 것. 아유미 버전은 킥 비트를 두툼하게 두고 미드 이상, 특히 스트링을 팍 덜은 현대적인 댄스 곡이여서 개인적으로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眞夜中は純潔(깊은 밤은 순결) / 椎名林檎(시이나 링고) + Tokyo Ska Paradise
 어떤 '무드' 를 만드는데 있어 통달한 시이나 링고의 곡. 비디오 만큼이나 컨셉이 확고한 곡이다. 장르 뮤직이면서도, 기타의 스카 리듬 때문에 보다 산뜻하게 들려온다. '도쿄 스카 파라다이스' 가 워낙 신나는 양반들이다 보니 염세적인 링고 보컬과의 조우에서도 이렇게 경쾌한 결과물에 도달했다. 개인적으로는 링고의 디스코그라피 중 가장 선호하는 싱글. 재킷이 이쁘다.

 


Theme from 'Lupin III' (2002 RMX)

  '루팡 3세' 야 그리도 유명한 만화며, '큐티 하니' 만큼이나 리메이크가 많다. 큐티 하니보다 이쪽이 원작의 감각을 리메이크들이 잘 이어나가는 편인데, 이는 리메이크의 테마 송들도 오리지널 테마의 기조를 유지하며 변주된다는 점으로 이어져 나간다. 원작의 분위기를 잘 살린 리메이크 작의 테마인 만큼 본편의 그 감각을 잘 이어간다. 경쾌하고, 역동적이면서도 충분히 유려하다. 현대적인 편곡과 이펙트로도 70년대의 흥겨운 분위기를 놓치지 않았다. 루팡과 일당들이 똥차를 몰고 달려가는 장면과 딱 어울리는 곡.

 

Theme from 'Lupin III' (1978 TV Score) 

 다만 원조만한 분점도 없으니, 이쪽이 앞서 소개한 리메이크 보다 찰지고 세련된 느낌이다. 이는 이런 류의 음악들의 전반적인 특징이기도 하니, 30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전혀 모자람 없이 세련됬다. '세련' 의 사전적 정의인 '서투르거나 어색한 데가 없이 능숙하고 미끈하게 갈고 닦음.' 이 딱 어울리는 곡이다.



Mon Amour Tokyo / Pizzicato 5 

 이런 장르의 말엽을 통과하기도 했고, 늘 레트로 사운드를 견지하던 피지카토 파이브다 보니 이런 류의 곡이 꽤 많다. 이건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곡. 코니시 야스하루의 작곡 스타일은 후크를 잘 안두는 편이라 기승전결이 명확한 곡이 드문데(= 심심한 편인데), 이것도 비슷한 편이긴 하나 멜로디 전개가 드라마틱해 심심함이 덜하다. 물론 보컬 노미야 마키의 목소리는 말할 여지가 없이 좋고.  



수사반장 오프닝 / 유복성

 앞에서 소개한 곡들과는 약간 다르다. 앞선 곡들이 재즈와 디스코의 시기적절한 결합이었다면, 이 곡은 재즈의 기조에서 충실하다. 빅밴드 풍의 웅장한 편곡은 디스코가 구태여 개입하지 않더라도 곡을 맛있게 완성시키고 있다. 이런 이유로 포스트에 끼워넣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비슷하게 느껴졌기에 첨부한다. 
 오죽 좋았으면 봉준호 감독이 "이 노래가 좋아. 처음에 나오는 노래가" 란 쇼트를 바쳤을까. 단연 우리나라 드라마 오프닝 곡중에 이 이상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다. 짧은 오프닝 테마지만 너무나 강렬하여 아직도 자주 회자되는 음악. 작곡가 유복성 선생님은 재즈 퍼커션이 본업이며 본디 국내 재즈 1세대로 입지가 단단한 분이지만, 사실 이 짧은 곡으로 인한 명성이 더 크다(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판단 보류).
  첨부한 동영상에서 오프닝 후 짧게 편집된 본편에서 흐르는 곡들도 참 진득하게 귀에 감긴다. 훵크와 재즈의 리듬감이 극이 원하는 긴장감 조성에 더할 나위없이 잘 어울린다. 이렇게 좋은 도구들이 있음에도 요즘 드라마들은 허구헌날 뒤질만큼 사랑한다며 울고, 짜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장르를 뭐라 불러야 하는지 아시는 분의 조언 부탁드립니다. 검색어를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