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정치

2010. 8. 7. 18:34잡문/일기는 일기장에

 비는 오다가다도 그치고 해는 들어나 빛나기를 주저한다.  먹먹하고 무거운 공기는 어디에나 있다.  저 멀리 빌딩 중턱에도 있고, 내 평정심을 압박하기 위해 이 방에도 있다.  여름은 그렇게 그 광휘를 빛낸다.

 평범한 나날들과는 반대로, 몸이 힘들어 마음이 지치는 하루가 지나가고 오늘의 태양이 마지막 여력을 다하고 있을 무렵.  그 짧은 46분의 긴장이 온 땅위에 만연하다.  에셔의 판화처럼, 낮과 밤은 그 궤적을 함께한다.  서로의 경계는 다른 서로의 경계가 된다.  불탄다는 표현보단 찜통같단 표현이 어울리는 낮.  그리고 뻔히 알 것 같지만 아직은 알 수 없는 새로운 밤.  공존할 수 없는 양자는 한쪽의 지배를 위해 불가사의한 공존, 아니 전투를 벌이고 있다.  그렇다.  지금은 혁명이 필요하다.  혁명이 멀지 않았다.

 귀납적인 추론에 따르면 승자는 뻔하다.  비록 잠시 뿐일 지라도, 밤은 이 미친 공기의 지배를 종식시킬 혁명가로 일어설 것이다. 하지만 불안은 근원적이여서, 이 혁명이 얼마만큼의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분명치 않다.  매일 찾아오는 이 혁명가는 매번 그 모습이 달라, 어떤 때는 사악한 독재자의 일당들처럼, 우리의 눈만을 가리고 촉각을 기만하기도 했다.  낮과 밤의 권력이 말 그대로, '야합' 했던 그 밤.  어설픈 군중들은 압정에 유린당하며 온몸으로 흥건하게 눈물을 적셨다.

 브루주아지는 어디에나 있고 어느 때나 있었다.  그리고 브루주아지는 늘 새로운 역사를 이끌어 나간다.  그들은 이 절대권력에 대항할 수 있는 자경단을 조직하여 자신들의 안위를 지켜나갔다.   창문마다 하나씩 들어서 있는 핸치맨들은 그 능력을 충분히 발휘해, 자신의 고용주들에게 평화를 제공하고 있다.  물론 그 평화가 무료로 제공되는 것이 아니여서, 자경단과 낮의 군주간의 알력싸움은 그 주변을 맴도는 무고한 군중들이 그 피해를 감수해야 했다.  역사가 늘 그렇듯이.

 이제는 다수의 쁘띠 브루주아지들도 자경단을 고용할 수 있는, 자유주의의 시대에 다달았지만 여전히 낮의 군주는 강력한 전제군주의 자리를 지키려 한다.  마치 경찰주의 국가의 경우처럼, 그는 충실한 군주로써 그의 신민들을 충실히 쥐어짜며 통제하고 있다.   결국 자경단은 그의 통제를 조금 덜어줄 뿐, 이러나 저러나 그의 지배하에 완전한 자유는 없다.

 상황이 이러한 지경에 와 있다보니, 군중은 뻔히 아는 그 혁명을 다시 기다린다.  늘 기대보다 모자랐고, 늘 기대보다 오래가지 못했던 좋은 시절.  이 46분의 시간은 그 긴장감으로 가득하다.  밤하늘의 세력은 낮의 군주를 향해 그 창끝을 겨눈다.  그리고 승자는 뻔하다.  모두가 기다리고 있는 그는 승리할 것이다.  비록 그 승리의 혜택이 원만하지 않을 순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아침이 되면 폭정의 군주는 다시 그 권력을 되찾을 것이다.  혹은 새로운 군주가 정치를 대신할 것이다.  어느 쪽이거나 역사상 필연적이다.  그리고 군중이 그들에게 무기력하게 끌려다니게 될것이란 것도 필연적이다.  넘어설 수 없는 권세 앞에서, 소규모 군벌들의 투쟁도 결국엔 복속될 것이다.  이 불쾌한 치세는 당분간은 계속될 것이며 어둠의 나폴레옹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마음도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적어도 영광의 군주 10월이 개선할 때까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