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19. 03:04ㆍ옷/옷장
소위 '패셔니스타' 란 이상한 칭호로 불리는 권지용등 일련의 연예인들이 쓰고 나와 이슈가 되었던 물건이다. 작년에 가장 잘 나간 안경이라면 단연 이걸 상정할 것이다. 톰 포드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도 안경의 모양세에 반했는지 지금까지도 수많은 가품들이 돌아다니고 있다.(입이 쓰다.) 그 정도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기에 충분한 디자인이다. 굳건하면서 귀품있게 생겼고, 동시에 쓰기 나름으로 얼마든지 귀엽고 사랑스럽게도 보인다. 이승환이 좋아하는 알랭 미끌리의 안경이 독특한 아이덴티티를 극대화시키는 능력을 가진데(그렇기에 이승환이 좋아하는 것이겠지만) 달리, 강한 인상에도 불구하고 범용성이 충분히 좋다. 이 양자를 다 취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제품을 핫 셀러로 부각시킨 요인이라 생각해본다.(물론 첫 이유는 아무래도 스타마케팅이지만)
쉐잎은 보스턴 스타일이면서 제법 오버사이즈다. 디테일에선 글로시한 마감과 금장 장식을 갖추고 있다. 이런 형태상 특성은 톰 포드 특유의 중후하면서도 섹시한 맥시멀리즘을 따르고 있다. 그리고 비단 이 제품뿐만 아니라톰 포드의 안경과 선글라스들 대다수는 이런 아이덴티티를 따르고 있다. 이런 충실한 디자이너 아이덴티티의 반영이 이 제품이 어필할 수 있었던 이유라 생각한다. 앞에서 말한 바대로 이 제품은 스스로 강렬하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굳이 그 제품의 특성을 알기 위해 의식을 연동시키고 집중시켜야 하는 하이데거적 접근법이 아니더라도 이 제품은 도처에 깔린 안경들 사이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드러낸다. 그러면서도 천박하게 보이진 않는다. 눈길을 끄는 것은 쉽지만 그것이 좋게 보이는건 얼마나 어려운지는 초크 스트라이프가 들어간 차콜 그레이 수트를 입고 빨간색 플라스틱 프레임의 안경을 낀 사람을 본 기억이 있다면(혹은 상상해보면)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면에서 이 제품에 투영된 톰 포드의 디자인 철학은 옳았고 제품은 성공적이다.
하지만 반대의 이해를 극대화하여 생각하면, 이 안경은 디자이너의 예술적 이해가 만든 안경이지 안경을 공학적으로 이해한 장인의 작품은 아니란 결론에 도달한다. 디자이너적 이해의 극점에 빅터 엔 롤프나 톰 포드, 혹은 사피로 계열의 브랜드들이 있다면, 노선상 반대인 공학적, 장인적 극점엔 실질적 발현의 방향은 상이하긴 하나 IC베를린이나 마사요시 사쿠와 같은 브랜드들이 있다. 그리고 안경에 대한 이해도가 외양 만큼이나 물자체에 신경을 기울이는 단계에 도달하게 되면 대다수의 경우 인식에 대한 의식의 흐름이 후자를 지향하게 된다.(이 이상의 단계, 즉 초월적 단계가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아무래도 있으리라 추론하긴 하나 도달해보지 않아서 아직 이해하진 못하겠다.) 나도 현재 그런 노선을 밟고 잇는데, 그러다 보니 이 제품에 대한 아쉬움은 점점 알게되는 지식들의 반작용으로 속속 등장하였다.
실질적인 현상으로 드러난 아쉬움은, 일단 아세테이트 프레임이며 외부에 글로시 코팅 처리가 되어있기 때문에 손쉽게 피팅을 할 수 없었다는게 가장 큰 문제였다. 덕분에 데칼코마니를 적용할 수 없는 얼굴에 혈류장애란 불편을 주었다. 피팅을 하기 위해 압구정의 파피루스를 찾았으나 거기서도 난항을 표했고, 일반 안경점에서 무리한 피팅을 시도하다 표면의 글로시 코팅이 녹아내리는 참사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게다가 피팅이 안된다는 점은 이 안경의 코받침이 서양인 평균을 따라 낮은 편이기에 코가 낮은 내겐 얼굴에 기름기가 끼면 흘러내리는 개선할 수 없는 불편함도 연동시켰다. 이런 불만들은, 물론 얼굴이 이 안경을 완전히 커버할 수 있는 소위 '미남' 계열의 얼굴이라면 문제될 것이 없겠지만 당연히 그렇지 못한 내겐 큰 불편함이었다. 그리고 이런 불편함이 소재로 인한 본질적인 문제이기에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점에서 가장 큰 아쉬움이었다.
이 외의 디테일적인 이해에서도 불만이 있었다. 일단 이후에 리저브 셀룰로이드를 소재로 사용하는 일부 하우스 브랜드의 안경들이 심지를 사용하지 않는 공법을 쓴다는 것을 알게되면서 심지를 사용한 이 안경에 애정이 급격하게 식어 버렸다. 리저브 셀룰로이드는 노화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변형을 충분히 겪은 상태에서 가공하기에 심지를 사용하지 않는다. 반대로 적용하면, 심지를 사용해 제작한 안경이라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차후에 변형이 일어날 가능성은 열려있다는 점이 대두되고 이 점은 완전한 안경(플라톤식이라면 이데아적 안경)에 보다 멀리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되도록 오래 사용하며 정을 줄 수 있는 물건을 선호하는 내게 애정이 식게 만드는 조건이었다. 그리고 이건 얼마나 아끼며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금장 도금이 의외로 약하게 되어 있어 산화되면서 벗겨지는 현상이 발생하였고, 이것은 이 제품이 온전한 상태에서 이탈해버렸으며, 그것이 로우 데님의 워싱과 같은 긍정적인 변화가 아니라는 점이기에 앞에서의 문제의식과 연동되었다.
결국 이건 꽤 오래된 사진인데 올해 여름까지 잘 쓰고 다니다가 팔아먹었기에 현재 내 악세서리 함엔 이 안경이 없다. 지나치게 깐깐한 관념적 이상과 대비되는 문제들로 인해 이 안경을 포기하게 되었다. 관점을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서 이 안경은 앞에서 말한 장점들이 부각될 수도 있고, 뒤에서 적은 단점들이 부각될 수도 있다. 대중은 전자를 선택했고 그렇기에 이 안경은 이슈가 되었다. 나는 후자를 선택했지만 전자의 장점을 잊지 못하기에 아직도 보다 만족스러운 선택을 위해 번민하고 있다. 길을 어떻게 가느냐는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문제일 것이며 목표가 확실히 드러나는 것이 아니기에 걸음이 늘 새로운 곳으로 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도 다시 이 안경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그만큼 아름다운 외양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과정은 충분히 즐겁게 다가오며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무엇을 하는지는 오직 신과 톰 포드만이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추억하며 기억하고자 이 글을 남긴다.
덤. 비슷한 외관의 선글라스 모델인 TF58은 동일한 디자인은 아니다. 테두리에서 브릿지로 향하는 각이 다르기에 전체적인 쉐잎이 꽤 달라보이며 노즈패드가 분리형으로 되있는 점과 브릿지 상단의 금장 디테일과 같은 약간의 요소가 변경되었다. 개인적으론 만약 안경으로 사용하려면 그쪽이 더 낳을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