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신발들

2011. 8. 8. 17:43옷/이야기


 원래 각각의 리뷰를 적어보려 했으나 밀리다 보니, 그리고 생각보다 다양한 신발들을 접하게 되어 세심한 글을 쓸 여력이 없었다. 그저 기억이나 해두려 뭉태기로 담는다.


H&M Sneakers / H&M 스니커즈
 

 재고 정리로 뒹굴고 있던 물건이라 이름 따위는 없다. 톰스처럼 간편하게 신을 수 있는 신발을 찾던 중 우연찮게 들른 H&M이 세일 기간이어서 하나 집어왔다. 오만 몇천 원 짜리던데 과감하게 후려쳐 만 오천 원에 판매하길래 갈구하던 스타일과는 거리가 있지만 집어왔다. 그리고 나름 만족하고 있다.

 컨버스 척 테일러의 다운그레이드라고 보면 된다. 전반적인 형태는 비슷하나 소재, 설계, QC면에서 척 테일러보다 더 떨어진다. 일단 전반적인 소재 선정에 SPA브랜드 답게 아무 생각없이 임한 감이 크다. 저가 브랜드라도 헤리티지가 누적되고 레퍼런스가 생기면 소재선정면에서 안정감이 생기련만 이건 디자인을 우선한 설계이다 보니 소재들이 좀 엄하다. 크게 거슬리는 것은 아니지만 아쉬운 감은 크다.

 그리고 창이 좀 구린 편. H&M이야 신발 전문업체가 아닌 만큼 충분히 불편하다. 하중을 고루 분산해주는 것이 아니라 뒷꿈치에 응축시켜 준다. 덕분에 오래 걷기에는 피로 누적이 심하다. 게다가 겉창의 웻지가 옅은데다 마모가 빨라 한달여가 지난 지금 거진 맨들맨들의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이 것만 신고 다니는 것도 아니련만 재빠르게 맛이 간다는 점이 마음을 쓰리게 한다.

 마지막으로 장마철에 흠뻑 젖도록 신고 다녔더니 사진의 창백한 하얀색은 온데간데 없고 흑탕물 자국이 생겼으며 본드가 올라와 누렇게 변했다. 나름 빈티지한 맛이라면 빈티지한 맛이겠지만 이렇게 급격한 빈티지화는 바라는 바가 아니다.

 이렇게 적고 보니 되게 나쁜 신발인 것 같지만 내팽겨쳐질 정도로 나쁜 것은 아니다. 장마철에 부담없이 잘 신었으며, 요즘도 나름 잘 신고 다닌다. 신발 자체가 부담없이 굴릴 수 있는 급이며 어느 코디네이트에나 잘 어울리는 편이다 보니 손이 자주 간다. 물론 이 것을 정가대로 오만 몇천 원 주고 살리는 없겠다만……. 



Grenson 'Sharp' Nubuck Wingtip Boots / 그렌슨 '샤프' 누벅 윙팁 컨트리 부츠

 국내에서는 아무래도 홍보부족 때문인 듯 트리커즈나 처치스에 비해 인지도가 낮은 편이지만(그쪽이라고 유명한 것은 아니지만), 그렌슨은 최초로 굿이어웰트를 공장제에 도입해 대량으로 구두를 찍어낸 유서깊은 브랜드다. 1874년부터 시작했으니 어연 140년 가까이 된 브랜드. 어찌보면 짱깨식 매뉴팩쳐링의 원조집이다. 오래된 집이다 보니 예전부터 관심을 두고 있었고, 이번에 좋은 기회가 있어 한 짝 장만했다.

 휴가때 어쩌면 등산할 일이 생길지 몰라 구비한 컨트리 부츠. 누벅에 스톰웰트, 다이나이트 솔[각주:1]이니 산타기에 최적화된 조합이다. 게다가 왜 그런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같은 다이나이트를 쓴 트리커즈의 스토우보다 제법 가볍다. 착화감도 하드 러버솔 치곤 괜찮은 편이다 보니 앞으로 신나게, 험하게, 즐겨보리라.


 다만 기대에 못미치는 부분이 있으니 바로 갑피의 가죽. 생각보다 가죽맛이 떨어진다. 앞서 말한 트리커즈의 그 것, 조금 두툼하면서 형태유지가 잘 되는 그 것에 비견하면 이건 얇고 주름이 쉽게 잡히는 편이다. 누벅말고 일반 가죽으로 된 제품도 봤으나 역시나 가죽맛이 좀 떨어지는 편. 질적인 면 뿐만 아니라 외관에서도 뭔가 부족함이 느껴졌다. 역시 싼 것은 싼 이유가 있다.


Rockport 'DresSports' Cordovan Tassel Loafer / 락포트 '드레스포츠' 코도반 테슬 로퍼

 내가 락포트 구두를 사게 될 줄은 나도 몰랐다. 평소 락포트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는데 이건 제법 근사하게 나왔기에, 게다가 코도반임에도 불구하고 9만원에 구매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기에 무심결에 사버렸다. 

 다만 락포트는 그 명성에 잘 부합했다. 구두에 기대할 수 없는 착화감이 이 구두에는 있다. 쿠셔닝만 놓고 보면 운동화에 비견할 수 있는 착화감이며, 갑피는 로퍼임에도 발을 잘 감싼다. 창은 락포트 특유의 에어쿠션 뭐시깽이가 달려 있어 그렇다 치더라도, 갑피의 설계마저 편안해질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 참 근사하다. 일단 힐 카운터가 보통 로퍼보다 조금 더 높게 올라가 발 뒷꿈치를 잘 감싸며, 발목선을 막 뽑은게 아니라 발의 곡선에 맞춰 잘 굴렸다. 발볼도 적당하게 배려해줬기에, 멋진(어디까지나 기능) 창과 결합하여 근사한 착화감을 형성한다.

 모양새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아니, 꽤 근사하다. 일단 코도반이기에 특유의 뻔지르르한 광택이 근사하고, 조직이 참 조밀하다. 알든의 코도반 구두를 볼 때 느껴지는 감상과 별 차이가 없다. 게다가 테슬 로퍼 특유의 느끼함과도 잘 결합되기에 풍모가 참 근사하다. 창쪽에 웰트선이 있는 점도 매력적. 이게 진짜인지 가라인지는 모르겠으나 앞으로 전창 교체가 가능하리란 막연한 기대를 품도록 만든다. 그러니 열심히 신어야지.  


Reebok Ex-O-Fit by Juun-J / 리복 엑소핏 바이 준지

 정욱준 선생님과 리복의 협업은 한 때 큰 이슈가 되었었다. 그리고 몇 시즌에 걸쳐 나왔으며 매번 좋은 반향을 얻었었다. 다만 어찌되었든 한참 철 지난 신발이건만 얼마 전에야 비로써 우연히 손에 들어왔다. 이런 신발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보니 아직 신어보지도 않았고, 그래서 '뭐 착화감이 어떻네' 하는 감상도 없다. 그저 찬란한 금빛이 매력적이기에 관상용으로나 쓸 뿐이고 앞으로도 그럴 듯 싶다. 클럽갈 때 검은색 스키니 진에 매치하면 괜찮을 것 같지만 문제는 내가 클럽을 안 좋아한다는 점. 결국 이 신발은 그리도 예쁘건만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


Nike 'HyperFuse' AirMAX 1 / 나이키 하이퍼퓨즈 에어 맥스 1

 나이키 프레젠테이션 때 나이키에서 바람막이와 함께 증정해주신 물건. 하반기 나이키에서는 하이퍼퓨즈란 신기술이 적용된 제품들이 발매되는데(이미 샵에 들어왔다 들었음)이것도 그 기술이 적용된 물건이다. 원단, 여기에서는 갑피 가공기법인데 각각 형태안정, 통기, 내구를 담당하는 세 층을 고압으로 압축해서 한 장의 원단처럼 만들어버리는 기술이라 카더라. 뭐 메커니즘은 어렵겠지만 요지는 다층을 단층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이며 이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기술을 어디에나 적용할 수 있다면 고어텍스 류의 기능성 원단을 레이어로 만들 필요가 없어지기에 보다 경량화, 간소화 시킬 수 있으며 이는 착용감을 크게 증진시킬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제대로만 쓰일 수 있다면 꽤 괜찮은 기술이다.

 그나저나 왜 이렇게 기술 이야기를 길게 쓰냐면 엑소핏과 마찬가지로 이 것도 신어본 적이 없기 때문. 아직까지는 집에서 관상용으로 활약하고 있다. 이런 하이, 아니 오버 테크놀러지 신발을 신기에는 내 발이 미천한 점도 있고, 색상이 워낙 게power이 컬러기에 안그래도 게이냔 소리를 간간히 듣는 내게 요건 좀 엄하다. 진성 게이가 될 때까지 아껴둘 예정이다.



Stussy Deluxe x Timberland Suede Loafer / 스투시 디럭스 x 팀버랜드 스웨이드 로퍼

 페니 로퍼같은데 홈이 뚤려있어야 할 부분에 스투시 로고가 턱하니 안착해있다. 이런 형태를 부르는 단어가 있었는데 기억이 안난다. 도대체 뭐라고 불러야 할까 고민하다 그냥 로퍼라고 적는다. 스투시 디럭스와 팀버랜드가 협업한 제품이며, 예상외의 로퍼기에 구미가 당겨 사봤다. 생각보다 괜찮고, 기대했던 만큼은 충분히 해내고 있다보니 한 달만에 애착이 크게 생겼다. 

 보시다시피 로퍼 치고는 조금 묘하다. 일단 두툼한 비브람 솔이 달려있다는 점이 그렇고 굵은 웰트선이 달려있다는 점도 그렇다. 아무래도 블레이크 래피드 제법인 것 같은데 이러나 저러나 로퍼에서는 생경한 모습이다. 다만 믹스매치임에도 크게 거슬리는 정도는 아니며 나름 잘 어울리는 감도 있어 골랐다. 막상 신어보면 꽤 근사하다. 가죽창이 주는 느끼함이 적고, 스웨이드로 된 갑피와 잘 어울려 경쾌하게 보인다. 착화감이야 비브람 솔에 가죽 안감이니 말할 것도 없고. 

 아무튼 스투시에서 이런 물건도 나온다는 점이 좋았다. 그리고 난 이런 엄한 클래스의 물건을 좋아한다. 선입견을 깬다는 점에는 묘한 매력이 있다.


Visvim Skagway High / 비즈빔 스캐그웨이 하이

아래의 뉴발란스도 마찬가지인데, 이 것도 내 물건은 아니다. 리뷰 만드느니라 잠시 빌려왔던 물건(UBIQ Korea 분들 고맙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첫 인상은 '컨버스가 뭐 이렇게 비싸' 정도였으나 요모조모 살펴보니 다 이유가 있어 그러함을 깨달았다. 허술하게 생겼지만 의도된 것이며, 내실은 충분히 단단하다. 보면 볼 수록 단순히 보이기에 예쁜 신발이 아니라 신발이 본질적으로 지향해야 하는 점이 무엇인지를 잘 통찰하고 있다는 점이 느껴진다. 나이키나 아디다스같은 거대 브랜드가 아님에도 이 정도의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점도 놀랍다. 보다 자세한 리뷰는 여기로.

다만 그래도 너무 비싸……. 


New Balance 576, 1500, 2002 / 뉴 발란스 프리미엄 라인

 뉴발란스 코리아에서 이번에  프리미엄 라인으로 출시한 제품들. 스케그웨이 하이와 마찬가지로 리뷰 때문에 잠시 걸쳐봤을 뿐이다. 다만 짧은 시간에도 충분한 인상을 전달해주었으니, 지금까지 한 번도 뉴발란스의 신발을 구입해본 적이 없고, 심지어 고려해본 적도 없는 내가 '살만하네' 라고 생각하게 만들 정도였다. 기존에 목격했던 뉴발란스의 제품들에 비해 풍모에서 느껴지는 질적 수준이 달랐고, 1500이나 2002의 경우에는 납득할만한 신기술들이 적용되었으며 실제 착화감으로 느껴지는 효과도 수긍할만했기에 좋은 인상을 얻기에 충분했다. 아무튼 보다 자세한 리뷰는 이쪽으로.

개인적으로 가장 큰 호감이 갔던 건 576 레이크 디스트릭트 팩의 초록색 물건. 바로 첫 사진의 그 것이다. 가죽의 무두질이 마음에 들었고, 슈 레이스와의 조합이 등산화를 연상케하여 든든해보였다……. 그래서 속이 쓰리다.
  1. 트리커즈만 해도 다이나이트 사의 로고가 박혀 나오는데 여기엔 그렌슨의 로고가 박혀있다. 특주인지 우라까이인지 모르겠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