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트 수트 이야기 / Zoot Suit

2011. 10. 7. 16:03옷/이야기


하위문화의 시발점을 어디에 두느냐는 기성문화에 대한 저항이 시작된 시점을 어디로 보느냐에 대한 관점 차이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다만 제가 생각하기에 남성 패션의 하위문화가 시작된 지점은 아무래도 이번에 소개할 주트 수트(Zoot Suit)일 것 같습니다. 행위 주체, 근간, 스타일에 있어 주트 수트는 그 이전의, 그리고 당대의 주류 남성 패션과 사뭇 남달라 보입니다. 

1930년대에 이르러야 뉴욕에 진출한 재즈는 입성하자마자 당대의 뉴욕 클럽들을 지배하며 밤의 문화를 바꾸어 나갑니다. 아시다시피 재즈는 노예 해방 이후 흑인의 영향력과 참여 비중이 백인보다 큰 최초의 행동들(Movement) 중 하나였으며, 덕분에 많은 흑인들이 사회적인 성취를 이루었고 그에 대한 동경과 추종이 생기며 일종의 문화집단을 형성하게 됩니다. 다른 문화집단들과 마찬가지로 새로이 생겨난 흑인 문화집단은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독자적인 스타일을 갖기를 갈망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흑인 특유의 취향과 당대의 동향이 결합하며 이전에는 찾기 힘들었던 그 무엇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는 민권운동이 있고, 음악 장르도 있으며, 할렘의 공고화도 있습니다.

주트 수트도 그 무엇들 중 하나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1930년대, 
당시 재즈클럽이 밀집하여 있던 뉴욕 할렘(Harlem)의 흑인 커뮤니티에서 시작되었으며 각지의 흑인 커뮤니티들로 퍼져갔습니다. 이름은 '최신'을 의미하는 당시 속어 'Zoot'에서 기인하였으며 이 스타일의 추종자들은 'Zootie'라고 불렸습니다. 이 독특한 스타일은 흑인들을 중심으로 하여 퍼졌으며, 소수의 하위층 백인들과 멕시칸들이 그 룩을 따랐습니다. 결국 주트 수트는 재즈와 나이트 클럽, 또 흑인이란 독자적이며 한정적인 문화에 근간을 두고 있으며, 주트 수트 자체의 체계와 영향 범위도 그와 동일하였습니다. 

주트 수트는 보시는 바 대로 독특합니다. 스리피스 테일러드 수트를 기본으로 두고 있지만 디테일의 면모들은 무법천지입니다. 코트 만큼이나 길어 무릎까지 내려오는 재킷, 높게 끌어올린 배바지, 엉덩이는 너풀거리지만 밑단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바짓단(Peg-top Trousers), 온갖 화려한 색상과 무늬를 다 끌어 쓴 텍스타일, 화려한 염색과 콩크 펌을 거친 헤어스타일, 그리고 방점을 찍은 화려한 악세서리와 긴 시계줄이 주트 수트의 특징들입니다. 이런 일련의 특징들이 가진 공통점은 화려함과 과도함입니다. 그리고 이는 과시욕, 현실의 비루함을 감추려는 치장욕, 주류 문화와의 구분점을 만들려는 의도, 커뮤니티를 결속시키는 유대감각 등으로 인해 발생했으리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는 오늘날 여러 패션 미디어에 올라오는 흑인들의 패션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주트 수트는 정치적 움직임의 아이콘으로도 기능했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미정부의 물자 통제정책이 시작되자 옷감을 많이 사용하며 제작에 많은 공을 기울여야 하는 주트 수트는 정치적인 배척을 받게 됩니다. 게다가 주트 수트가 밤문화와 유색 인종들을 토대로 전파되며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점은 주류 백인 사회가 껄끄럽게 생각하기에 충분한 조건이었습니다. 주트 수트에 대한 규제와 반대 켐페인이 전개되자 이에 반발하는 산발적 폭동이 발생하였고, 주트 수트에 대한 반대가 비단 패션 스타일에만 한정하는 것이 아닌 하위 문화집단 전체에 대한 규제를 내포하고 있었던 만큼 반대에 대한 반대도 주류 문화권 전체에 대한 저항으로 이어져 나갔습니다. 이 중심 아이콘으로 앞선 말한 주트 수트가 있었습니다. 주트 수트가 스타일이자 이념의 표상이 된 것입니다. 

이런 점들에 제가 하위 문화 스타일의 시발점이 주트 수트일 것이라 생각하는 근거가 있습니다. 주류 문화의 체계를 벗어나면서 대항성을 가지며, 그 행위 주체가 주류에 속하지 않고, 동시에 문화 집단이 공유하며 서로를 결속시키는 코드를 가지고 있단 점은 주트 수트를 하위 문화 패션으로 독립되게 하며, 이런 관념적 특징들이 이전의 남성복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독특한 점이란 면에서 주트 수트를 최초의 하위문화 패션으로 읽게 합니다. 이후에는 말론 블란도가 이끈 모터사이클 룩, 락엔롤의 함께 대두된 데님 패션 등 문화와 패션이 결부된 다양한 하위 문화 패션을 찾아볼 수 있지만, 주트 수트의 이전에는 이런 경우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특히나 남성복의 분야에서는 그렇습니다.

몇 년 전 부터 미국에선 과하게 내려입는 바지가 쟁점화되고 있습니다. 세기 팬츠(Saggy Pants)라 불리는, 교도소에서 시작된 바지 내려 입기는 일종의 정치적 쟁점이 될 정도로 부각되며 최근의 하위문화 패션들 중 가장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어느 시대에나 하위문화 패션은 있습니다. 주트 수트는 그 선구자였구요. 주트 수트는 오늘날에는 쉬이 참조하거나 모방하기에 무리가 있는 모양새지만 
독립된 소수의 문화가 시각적으로 제시된 이른 경우란 점에서 기념비적인 가치를 지닙니다. 이러나 저러나 저항정신이 완전히 사라질 정도로 사회가 완벽해지지 않는 이상(그럴 가능성이 0에 무한수렴하기도 하지만), 제 2, 제 3의 주트 수트는 계속 등장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혹시 또 모르죠. 데카르넹 같은 사람이 절충안을 제시하면 우리들은 거기에 또 매료될지도. 다들 돌고 도는데 주트 수트라고 돌아오지 말란 법 없지요. 

참조할 항목
영화 '말콤 X'
유시민. 거꾸로 보는 세계사.
교문사. 복식미학강의2: 복식미 엿보기
네이버캐스트 패션 라이브러리 - 주트 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