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 평정

2011. 6. 3. 07:14잡문/일기는 일기장에



 이사를 마치고 2주 정도 지났다. 집 정리가 어느 정도는 끝났고, 공황 상태도 어느 정도는 가셨다. 담배를 물고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면 평온해지는 옥탑 풍경. 산과 마주하고 있는 동네에 살다보니 높은 건물에 둘러싸여 있지만 나쁘지 않다. 해가 지면 서울 타워가 반짝 거리고, 야구 명문 장충 고등학교 학생들의 베트 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런 멋진 풍경은 옥탑만이 가지는 비견할 수 없는 장점이다. 이 때문에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한다만, 충분히 가치가 있다.


 부엌이 좁아 세탁기를 밖으로 꺼내놓을 수 밖에 없었다. 본디 지붕은 배수 때문에 모서리 쪽으로 경사지게 나라시를 쳐야 하는데, 그게 제대로 안 되어 있어 물이 고이면 사방을 빠진다. 마음에 안들긴 한다만 뭐 매일 빨래 돌리는 것은 아니니 그러려니 한다. 

 사실 이 외에도 마음에 안드는 부분은 얼마든지 있다. 처음 왔을 때는 배선이 정말 개판이라서 마치 거미줄에 둘러쌓인 듯, 현대 미술을 보는 듯 했다. 지금은 많이 정리하긴 했다만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애초 시공할 때 배선을 개판으로 해(배선을 고려 안하고 일단 만든 다음 뚫은 것으로 보인다) 현 시점에서는 어찌 방도가 없는 부분들이 많다. 마음 같아서는 다 뚫고 작업하고 싶지만 금전적 지출이 상당할 것이기 때문에 참고 또 참는다. 아마 공구가 갖춰지면 직접 할 것이다.

 배선 외에도 많으니, 사진에 보이다시피 옥탑 처마 보강으로 아시바를 그대로 꽂아둔 것만 봐도 그렇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보자면 나쁘지 않으나 허접해 보이는 것은 감출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여기저기 비는 점들이 넘쳐난다. 이 풍경을 얻는 대가려니 하고 넘어간다. 


 북한산 인수봉을 오르는 듯 현격한 계단을 거쳐야만 집에 당두할 수 있다. 사진에 보이는 것 외에도, 사진의 그 것보다 더 긴 계단을 하나 더 거쳐야 한다. 둘 다 구르면 골절이 아니라 절명할 것으로 보이기에, 술을 먹어도 절대로 만취하지 않게 되었다. 단순 운동 기능 외에도 늘 정신을 가다듬게 한다는 점에서 유익하다. 이건 개선의 여지가 없기에, 그저 긍정적인 면만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 계단을 오르면 담장 옆으로 장미 덩쿨이 보인다. 옆 빌라의 화단이 집과 이어져 있다. 이건 참 근사하다. 황량할 풍경을 온화하게 만들어 준다. 매연이 가득 찬 서울에서도 건물들로 병풍을 친 곳에 살지만, 쾌청한 조망과 소담한 정원은 충분한 안정감을 준다. 아직까지는 이 집에 들어오길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