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케묵은 이야기

2011. 3. 22. 07:03잡문/메모


1. 대상과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말초에 가장 가까운 것이 집합에서 그 영향력이 가장 크다. 이 명제는 기계의 운용에서 대체적으로 옳다. 조합을 통해 기능하는 것에서 특정한 부분을 바꾸어 성능 변화를 노린다면, 가장 반응 대상과 가까운 것을 바꿔보자. 

1.1. 세부적으로 말하자면, 오디오에서는 스피커, 굴러가는 것에서는 타이어, 카메라에서는 랜즈를 의미한다. 암만 그 무거운 벨런스 입력 케이블을 들어다 놨다 해봐야 스피커 바꾸느니만 못하다.

1.2. 다만 이런 변경은 나머지 부분들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벨런스를 맞춰 줬을 때  도달했을 때 효과가 크다. 즉 어떠한 스피커라 할지라도 필요로 하는 수준에 충분히 부합하는 출력이 확보된 다음에야 그 성능을 십분 발휘할 수 있으며, 타이어가 암만 브릿지스톤 18인치 광폭이라도 차가 다마스면 차 무게만 늘어날 뿐임을 의미한다(다 뜯어고치지 않는 이상 끼우지도 못하겠지만).

1.3. 결국 적당한 수준의 조합이 갖춰진 상태에서 변화나 질적 향상을 시도할 때는 말초부터 시작해야 함을 말한다.

2. 저렴한 헤드폰이지만 핸드폰 잭으로 쥐어짜내어 들을 때와(스마트 폰 아니다) 앰프에 물려서 들어 본 소리는 가히 천양지차. 수사로는 '허리가 굵어지는 느낌' 이 가장 적합한 것 같다. 출력이 확보되면서 전체적인 소리에 힘이 실렸는데, 저음의 타격감과 밀도 증가가 가장 크게 느껴졌고, 기대하지 않았던 고음의 명료함이 살아났다는 점도 있다. 예전에 오덕질 하던 추억이 새록새록 살아나면서, 미루어 두고 있던 음반 듣기를 다시 시작했다. 

2.1. 한 때는 당대에 출시되어 있던 오디오-테크니카의 우드 하우징 플래그쉽 헤드폰 7개 중 4개를 가지고 있었을 때도 있었고, 한참 그라도 사운드에 꽂혀서 RS-1과 MS-Pro 를 동반으로 가지고 있었던 적도 있다(여기에 325까지). A8의 리테일 가격이 8만원에서 24만원이 되는 동안 단계별로 매번 구매와 방출을 반복했었다. 그때는 참 즐거웠다. 다만 더 즐거운 것을 놓치고 있었으니, 소리를 듣는 것보다 음악을 듣는 것이 더 즐겁다는 점.

2.2. 이제는 우리나라 헤드-파이 시장도 충분히 확장됬다 보니, 다시 시작해보려 해도 엄두가 안난다. 예전에는 간단명료했다. 이어폰은 ER-4 아니면 E5. 헤드폰은 HD600.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얼마 없다보니 선택 경우의 수가 아주 한정적이었는데, 이제는 너무 호시기다 보니 오히려 혼란스러울 뿐. 좋은 물건이 너무 많다.

2.3. 늘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면 좀 달랐을까? 그러기에는 돈이 너무 많이 드는 취미였다. 게다가 하이엔드로 가면 헤드파이만의 장점도 옅어지다 보니 슬그머니 씬에서 관심이 멀어져버렸다. 마치 RPG 게임을 할 때마다 느끼는 감상과 비슷하다. 만랩을 찍고 나면 할 일이 없다. 게임의 경우 업체가 컨텐츠를 끊임없이 제공하는 능동적인 역할을 하지만, 이런 취미에서는 유저가 스스로 능동적으로 개척해야만 하거늘 그러기에는 내 역량이 부족했다. 돈도 없었고…….

2.4. 지금은 소리가 좋아지는 것보다 줄이 없어지는 것을 꿈꾸고 있다. 자브라에서 나오는 블루투스 스테레오 헤드셋(Jabra Halo BT650s) 이 근사해 보인다. 소리도 소리지만, 자전거 탈 때 자꾸 걸리는게 매우 불편하다. 재킷 입을 때는 선을 어떻게 처리해보려 해도 볼품 없고. 소리를 좀 포기하더라도 편리하게 살고 싶다. 어짜피 '음악' 을 듣는 거니까.

3. 한 십 수년 전쯤에 'CGW' 란 게임 잡지를 읽다 외국의 유명 개발자들이 '컴퓨터 게임은 10년 내로 종말을 맞이하고, 콘솔이 모든 역할을 전담하게 될 것이다' 라고 말하는 인터뷰를 읽었다. 당시에는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었는데, 요즘 느끼기에  PC 게임은 아무래도 미래가 없어 보인다. 역시 생산자가 소비자보다 흐름을 빨리 읽는다는 점(혹은 흐름을 만들기도 한다는 점)은 늘 분명하다.
 오늘날의 콘솔은 대다수가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의 비주얼을 제공할 수 있으며, 컨텐츠 면에서도 네트워크 연동과 이를 통한 DLC, 그리고 저장 미디어의 질적 발전으로 인해 PC에 하등 뒤쳐지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동등한 조건을 갖추게 된 상태에서 콘솔은 일단 초기 투자비용이 컴퓨터에 대비하여 상당히 저렴하단 유통 측면의 강점을 가지고 있으며, 개발자들에게 완성된 폼 하에서 개발에 임할 수 있다는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이점은 PC의 '다이렉트X' 에도 해당되긴 하다만, 콘솔의 하드웨어까지 포함하는 '완전히 한정된' 폼과 비견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에 반해 PC 게임만의 독보적인 강점은 강력한 하드웨어를 통한 퍼포먼스 정도만이 떠오르는데, 과연 단순 오락만을 위해서 값 비싼 퍼포먼스 PC를 구매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런 상황에서 콘솔의 입력 도구가 보다 발전한다면, '컴퓨터로 게임을 즐긴다' 란 행위의 시제는 과거에 한정하게 될 것 같다. 키보드와 마우스의 편의를 충분히 제공할 수 있는 입력 도구가 마련된다면, 아무도 생각치 못했던 '오락실의 사라짐' 과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4. 예전에 삼보에서 '루온' 이란 특이한 컨셉의 PC를 발매했었다. 각 중요 하드웨어들이 모듈로 분리 되어 있어, 원하는 부분을 간편하게 바꿀 수 있는 체계였다. 예컨데 비디오 카드를 바꾸고 싶다면 카드가 속하는 모듈을 통째로 빼고, 새로운 모듈을 끼워 넣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당대에는 제법 참신한 체계여서, 성급하게 나마 미래 컴퓨터의 방법론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루온이 패전한 이유에는 삼보만이 참여한 체계란 점이 가장 클 것이다. 모듈형 PC가 성공하기 위해선 시장 전체가 참여할 수 있는, 채산성과 시장 규모가 확보되어야 할 터인데 단일 업체만이, 그것도 프리미엄을 많이 붙혀먹던 당시의 삼보만이 참여한 체계는 그 시작부터 미래가 불분명했다. 결국 참신한 아이디어가 적용된 새로운 양식의 PC는 '기술 시현 모델' 로 사장되어 버렸다.
 이러한 '모듈형 가전제품' 의 컨셉은 비교적 최근에 발매된 카메라인 리코 사의 'GXR' 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GXR은 그 혁신성으로 많은 찬사를 받았는데, 랜즈만을 교체할 수 있는 기존의 카메라에 비해 GXR 의 컨셉, 랜즈와 함께 렌즈에 최적화된 이미지 센서까지 교체되는 컨셉은 분명히 혁신적인 아이디어였다. 기본으로 제공되며 지속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오직 조작과 관련된 부분들 뿐, 이런 체계에서는 그리 변화를 필요로 하지 않는 조작부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중요 기능을 향상시키거나, 원하는 방향으로 바꾸어 나갈 수 있다. 소비 효율성이 증대된다는 면에서 이는 소비자에게 충분히 이로운 체계다. 
 다만 루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GXR의 미래도 어둡다. 이는 삼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리코만이 참여한 체계란 점이 가장 크게 작용한다.다. 이번에도 루온 때와 같은 아쉬움이 남으니, 관련 업체들을 모두 포섭할 수 있는 체계로 발전해 나아가는 것은 요원하기만 하단 점이다.
 모듈형 가전제품은 현 시점에서는 결국 소비자에게만 이로운 것으로 보인다. 생산자에게 있어 소비 효율성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소비 효율성의 증대는 생산자가 바라지 않는 바일 수도 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불합리한 소비도 결국에는 소비이기에, 생산자의 입장에서 최대 판매량은 늘어난다. CPU만 바꾸는 것보다는, 그에 맞춰서 보드까지 바꾸는 편이 시장을 크게 만드는 것이다.
 기업에 도덕성을 바라는 것은 무리가 있기에, 모듈형 가전제품이란 편리한 체계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결국 생산자의 입장에 정합한 이유(혹은 이득)가 등장해야만 할 것이다. 삼보나 리코 같은 모험가가 간혹 있긴 하다만, 생산자 총체는 지극히 이윤 추구적이고, 안정 지향적이다. 다만 포서드의 경우처럼 새로운 체계에 대해 생산자까지도 긍정적으로 반응할 수 있을 가능성이 있기에, 모듈형 가전제품은 아쉬운 발상으로 남겨둘 수 있다. 

4.1. 모듈형 가전제품 이야기를 하다가 떠오른 발상인데, 결국 언젠가는 PC가 사라지고 '모듈형 가정용 컴퓨터'(HC. Home Computer 라고 해야 할까?) 가 자리잡는 시대가 올 것 같다. 'HC' 는 각 가정마다 매인 프레임이 하나씩 설치되고, 이에 필요로 하는 모듈을 추가하여 사용하는 체계를 말한다. 예컨대 메인 프레임이 자료 보존이나 중앙 처리, 전원 공급과 같은 큰 업무들을 처리하는 상태에서 아이 방에는 게임과 멀티미디어를 활용할 수 있는 비교적 고사항의 모듈이, 서재에는 비교적 저사항의 사무용 모듈이, 주방에는 가전 제품을 구동하는 최저사항의 모듈이 설치되는 것이다. 여기에 필요에 따라 모듈의 위치를 변경하거나 추가한다.
 이는 하드웨어적 수준 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적 수준에서도 가능하다. 이미 클라우드 컴퓨팅의 개념이 충분히 자리잡은 상황에서, 와이어리스는 얼마든지 그 영역을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데이터는 물론 전력까지도 무선으로 전송하는 세상 아닌가. 이를 HC 체계에 적용하면, 별도의 연동된 처리장치 없이 메인 프레임의 자원을 전송하는 것 만으로 활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내 방에는 출력장치(Ex. 모니터나 프로젝터) 와 입력도구(Ex. 키보드나 동작 인식 센서) 만이 존재하고, 자료 보존와 연산, 전송의 업무는 메인 프레임이 전담하는 것이다.
 이것이 등장할 수 있다면, 체계가 확장되어 비교적 먼 미래에는 국가 컴퓨터(NC. National Computer), 혹은 세계 컴퓨터(IC. International Computer) 도 가능할 것이다. 진정한 '유니버셜 폼' 이 마련되어 형식간의 대립으로 인한 소모가 없어지고, 동시에 개인의 독립성이 보장받을 수 있다면, 그다지 나쁜 미래도 아닐  것이다. 조건 둘 다 어렵긴 하다만 나쁜 일은 다 이루어지는 마당에 좋은 일이라고 꼭 안될 법도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