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커즈 다니엘 플레인 더비 트램퍼 / Tricker's Daniel Plain Derby Tramper

2011. 3. 8. 04:20옷/옷장



 모두가 좋아하는 '느낌길 관심상품 목록' 에서 오랫동안 묵다가 얼마전 내 신발장으로 거처를 옮겼다. 본디 '4497 라스트의 윙팁 브로그', 즉 'Bourton' 모델을 점찍고 있었으나 미중고 상태의 물건이기에, 게다가 신품가의 1/3 도 안되는 가격에 올라왔기에 "어머 이건 꼭 사야해" 가 발동했다.

 다만 판매자에게 상품의 인포메이션을 얻지 않아 모델명을 찾는데 한참 걸렸다. 게다가 결과적으로 찾고 보니 꽤 희귀한 모델이어서 정보가 비교적 드물었다. 모델명을 찾기까지의 과정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일단 갑피의 형태는 플레인 토인 'Marlow' 와 비슷하지만 스퀘어 토인 말로에 반해 이건 라운드 토이며 라스트는 'Stow' , 혹은 'Malton' 의 '4497s' 와 동일해 보였다.
2. 'Woodstock' 과 비슷한데 쿼터[각주:1]가 두 장으로 나누어진 우드스탁에 반해 이건 한 장.
3. 쿼터 형태는 'Pebble' 과 흡사하나 말로와 마찬가지로 라스트가 다름.
4. 계속 찾다보니 'Daniel' 모델과 형태가 동일했다. 다만 다니엘은 스웨이드나 브로그 모델이 주류였기에 일반 레더 모델을 확인하기까지 꽤 방황했다.
5. 결정적 확인을 어렵게 했던 요인은 바로 아웃솔[각주:2]. 브릭솔로 보이는데 트리커즈에서는 쓰인 것을 이전에 본 적이 없었고, 아직도 동일한 솔이 달린 사진은 찾지 못했다. 현재 확인한 다니엘은 레더솔이나 EVA솔, 다이나이트 솔로 나오는 것 뿐.

 여기까지 검색 결과 'The Jermyn Street Collection' 라인의 'Daniel' 일 확률이 90% 이나 아직 찜찜하긴 하다. "혹시 창갈이를 한 것이 아닐까" 도 생각해 봤으나 창갈이를 할 정도로 신었다기엔 갑피의 상태가 너무 좋다. 결국 잠정적으로, 그리고 심증적으로 '다니엘의 오더 메이드' 로 추정하고 있다(아시는 분의 조언 부탁드립니다).

 재질은 Calf Skin[각주:3]으로 추정. 색상을 기성품 셀러는 Cognac라 부르고, 오더 메이드는 Arcon Antique Calf Leather라 부른다. 그나마 명확한 점은 4497 라스트란 것 뿐. 자주 보이는 컨트리 부츠와 동일하다. 

 이런 경우는 정말 오래간만이다. 가지고 있는 물건의 기본 정보 중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 좋은 구두 신기는 참 어렵기만 하다.


 우선 가장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었던 아웃솔 모습이다. 러버솔 트리커즈는 다이나이트 솔과 코만도 솔이 많고, 비브람 솔, EVA 솔 등이 간간히 쓰이는데 이건 도무지 본 적이 없었고, 결국 찾지도 못했다. 덕분에 아직도 해매이고 있다. 이러나 저러나 착화감은 준수하다. 개인적으로 다이나이트 솔이나 닥터 마틴류의 깍두기 형 하드 타입보단 스니커즈 같은 소프트 솔을 선호하는데 이건 후자에 가깝다. 마모야 빠르겠다만 쿠셔닝이 근사하기에 좋다.

 다만 러버 솔을 보다 보니 그 제법에 의문이 생겼다. 저렇게 두툼한 고무를 봉재했을리는 만무하고, 그렇다면 아무래도 웰트로 봉재한 인솔에 본드로 접합하는 방식이었을 것인데, 그렇다면 웰트의 원론적인 의미는 벗어나는게 아닌가 싶다.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뭔가 오묘한 방법이 쓰였거나, 구두가 오묘한 것이거나.

 트리커즈에 매료된 이유 중 하나가 인솔의 브랜드 로고다. 이래저래 적힌 게 많아 꽉 차면서도, 큰 폰트의 브랜드 네임 떄문에 이 구두가 트리커즈임이 명확하게 보인다. 벗었을 때 보이는 즐거움. 이런 감춤맛이 좋다.  


  웰트선. 스톰 웰트고(http://hyperlife.tistory.com/173 참조) 패인팅도 되어 있다. 아무래도 왁스류의 도료인 듯. 브로그 없는 플래인 토 더비다 보니 고전적인 제법으로 만든 구두에서는 최상의 방수력을 가진 형태다. 이런 구두를 신고 물가를 뛰노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겠지만…….

 트리커즈에 매료된 이유 또 하나가 있으니 바로 이 두툼한 웰트선이다. 트리커즈가 잡지에 처음 등장할 무렵 주로 지면을 채우던 구두들은 웰트선이 감춰졌거나 공법이 다른, 매끈한 이탈리아 풍 구두들이었다. 그런 틈에서 두꺼운 웰트선 때문에 투박하게 생긴, 그리고 강인하게 보이는 트리커즈는 남다른 향취를 풍기고 있었다. 아무래도 가장 크게 트리커즈를 꿈꾸게 한 요소는 바로 이거다.


  개인적으로는 보강이 감춰진 아일릿[각주:4]을 좋아하는데 이 구두는 풍모가 '본격 캐주얼 산으로 들로' 다 보니 이쪽이 더 잘 어울린다. 아일릿이 4쌍 이상으로 넘어가면 전체적인 실루엣이 글레머러스 해지는 감이 있는데, 이 정도가 구두의 전체적인 컨셉에 부합하는 리미트라고 생각한다.


  톰 브라운의 초기작들처럼, 대개의 비싼 물건들은 이렇게 핸드 마킹이 들어간다. 비단 본연의 용도 외에도, "이거 만드는데 손 많이 갔음" 을 과시하는 부가 효과가 크다. 사이즈는 UK 7.5. 265mm를 신는데 딱 맞았다. "싸게 샀는데 사이즈도 맞다니……." 이럴 때면 기분이 몹시도 삼삼하다. 


  한 해에 구두를 한 켤레씩 사고 있다. 아무래도 아직까지는 운동화 대비 활용도가 떨어지고, 가격도 많이 비싸다 보니 "험하게 쓰는 물건일수록 저렴한 것으로" 란 지론에 정면으로 부합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한번 들일 때마다 손을 벌벌 떨고, 들인 후에는 노심초사 사랑과 정열을 담아 관리한다. 이것도 그럴 듯 싶다. 이러나 저러나 좋은 물건을 들였기에 만족스럽게 바라보고, 만족스럽게 신고 있다.

 아직 정체가 불명확한 물건이긴 하다만, 10년 후 어느 날 아침에도 볼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어쩌면 내가 없어질 수도 있겠지만…….
  1. 구두끈 구멍(아일릿)이 달려있는 양 날개. [본문으로]
  2. 외창. 지면을 맞이하는 바깥 창을 말한다. [본문으로]
  3. 카프 스킨. 한 돌이 안된 송아지의 가죽을 지칭하나 보다 세분화해 적용할 경우 6개월 미만의 경우를 지칭. [본문으로]
  4. Eyelet. 끈 구멍. 비단 구두끈 뿐만 아니라 의복 일반에서 '끈이 통과하는 구멍' 을 통칭한다. 또 그 구멍을 보강하는 금속제를 의미하기도 하기에, 본문에 쓰인 용례는 부적합한 감이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