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리티지 리갈 맨체스터 / Heritage Regal Manchester
2011. 3. 8. 06:05ㆍ옷/옷장
무려 10개월 정도 지난 글이다. 다른 블로그(Generis.co.kr 기왕이면 여기도 좀 와주세요) 에 개시하여 나름 좋은 반향을 얻었었다. 일단 이 곳에는 없었기에 보존 차 옴겨두는 것도 있고, 그 동안에 알게 된 점들을 통해 수정, 보안을 거쳤다. 그렇다. 이하는 나름 리마스터 버전이다.
어떤 의미로는 '독보적인 영역' 을 차지하고 있는 저 유명한 구두. 헤리티지 리갈의 7시리즈 윙팁 모델이다. 풀 네임은 Heritage Regal Manchester. 모델넘버는 MDT7002CR31. 닉네임은 '헤리갈 쳇윈드맛 1'.
적절한 가격대와 준수한 퀄리티를 동시에 갖추기는 쉽지 않다. 하나만 갖춘 것은 많으나 그건 객관적인 관점에서 '좋은 물건' 이라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전자만 갖춘다면 수많은 기성화들 중 하나로 잊혀질 것이고, 후자만 갖춘다면 매달 나오는 남성지 속에서만 그 광휘를 발휘할 것이다. 헤리티지 리갈 7시리즈는 제법 이 어려운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다. 재색을 모두 겸비하였고, 그 덕에 많은 긍정적 회자의 대상이 되었다. 어찌보면 당연하고 당연하다. '좋은 물건' 인데 어찌 무시당하겠는가?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일단 리테일 가격은 30만원대 중반이다. 동일한 제법이나 컨셉을 가진 수입 구두에 비하면 비교적 저렴한 편이다 2. 여기에 구둣방 상품권과 세일 기간을 활용하면 가격은 한참 더 내려간다(20만원대 초반에 구매한 사람들도 많다). 동일한 제법을 사용한 영국계 브랜드의 제품들이 최소 50만원대에서 출발하는 것에 대비한다면, 헤리티지 리갈의 반값에 불과한 가격은 분명 큰 장점이다.
물론 가격만 옳다고 '좋은 물건' 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가격이 '색' 이라면 '남심을 자극하는 프레스티지 프로덕트' 란 명제에 부합하는 실력, 바로 '재' 도 보유해야 한다. 이 점에서도 헤리티지 리갈의 7시리즈 제품들은 빠지지 않는, 제법 걸출한 수준에 올라 있다. 기술적인 문제나 단가 등으로 인해 소수의 브랜드에서만 사용하는 '굿 이어 웰트' 제법 3을 사용했고, 주문제작이 가능한데다 이탈리아 산 카프 스킨 4을 사용한다. 그리고 코르크와 가죽이 사용된 창을 사용한다. 이 정도면 색에서도 준수한 수준이다.
디자인은 개인의 심미관에 따라 달라 보일 수 있으나 적어도 내게는 근사하게 보인다. 라스트는 벨루티 등의 글래머러스한 스타일과 알든, 트리커즈 등의 브랜드에서 보이는 투박하지만 강건한 스타일의 간극 중간에 있고, 이 정도면 적절하다. 전체적으로 고전적인 영국 구두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면서도 약간은 날씬하게 빠져 고루하게 보이지 않는다. 구매한 제품의 경우 버니싱 컬러여서 전체적인 흐름에 긍정적인 효과를 더한다. 그리고 과하지 않으며 경쾌함과 기품을 배가시켜주는 펀칭과 브로깅이 있다. 이 정도면 감히 참 이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기에 구둣방 아저씨에게 '젊은 친구가 신고 다닐 구두 치곤 너무 좋은데' 란 핀잔을 들으면서도 구입했지 않았겠는가 5.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가죽색의 톤과 성의있는 재단, 적절한 패턴이 적용된 풀 브로그. 이러한 디자인 요소들은 혼재하면서도 잘 어울려 구두를 경박하지 않게 만든다. 그리고 이는 이 구두가 원론적 형태를 지향하고 있음에 근거한다. 즉, 클래식을 지향함을 말한다. 이 정도면 20년 구두로 충분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웰트 제법으로 제작된 구두는 적어도 이론 상으로는 전창 갈이가 가능하다 6. 이런 점은 이 구두가 언젠가 아들 손에 구두약 떡칠될 가능성을 더 높혀준다.
가죽창은 착화감을 향상시킬 수는 있으나 마모가 심해 쉽게 헐어버린다. 고로 이 사진은 가죽창 원형의 영정사진이다. 창 외각의 박음선은 월트 기법의 특징이다. 접착제가 아닌 봉제를 통해 갑피와 창을 연결하기에 저런 선이 남는다 7.
7시리즈 모델들은 안쪽에 모델넘버와 사이즈가 사진과 같이 마킹되어 있다. 이런 마킹은 비교적 고가 브랜드의 구두에서 발견할 수 있으며, 보다 많은 수고를 기울였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실질적으로 그런지는 모르겠다만). 결국 수제화의 인상을 확실히 심기 위한 의도로 보이는데 나쁠 건 없다.
인솔엔 금박의 로고가 그려져 있으며 언젠가는 지워지겠지만 착용한지 한달정도 된 시점까지는 멀쩡했다.
비단 이 구두 뿐만 아니라, 헤리티지 리갈 7000번 시리즈는 어느 면에서나 참 절묘하다. 물론 신본 지하 던전이나 유니페어 같은 곳에서 팔리는 더 '헤리티지' 한 수입 브랜드들의 구두들과 어께를 나란히 하기에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있음이 분명하다(그것이 관념적인 면인지, 물질적인 면인지는 논외로 한다). 하지만 이 정도만 하더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수준이며 왠만한 장소에서는 지탄받을 일이 없을 것이다. 앞으로도 헤리티지 리갈이 지금까지의 걸음만큼이나 건실한 행보를 이어나가길 기원한다. 그래야 20년 후에 아들이 망친 이 구두를 버리고 한켤레 새로 구매할 수 있을 터니 말이다.
그리고, 신본 지하 던전에서도 이 제품과 친구들은 당당히 자신을 뽐내고 있다.
그리고, 신본 지하 던전에서도 이 제품과 친구들은 당당히 자신을 뽐내고 있다.
2011.02.07. 애프터 서비스
1.1. 바로 위에서 "왠만한 지탄받을 일이 없는 구두다." 라고 적었으나, 알아보니 실제로 다수의 클래식 포럼에서 지탄받고 있었다. 주로 가죽 무두질의 수준과 염색의 완성도 면에서 비난을 받고 있었는데, 갈라짐이 쉽게 일어나거나 균일하게 되지 않은 염색이 있는 경우에 기인한 문제들로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10개월 정도 착용한 현 시점에서 별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으며, 크게 퀄리티에서 부족하다고 느끼는 점이 없다.
1.2. 동가격대의 구두로 인도네시아의 잘란 스리와야와 영국의 로크, 헤링슈가 있어 비교대상이 되고는 하는데,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헤리티지 리갈은 퀄리티면에서 잘란 스리와야보다는 나은, 혹은 동급 수준인 것 같고, 로크나 헤링슈보다는 못한 것 같다. 로크와 헤링슈는 신어본 것이 아닌, 단순 보이는 가죽맛만 비교한 것이기에 정확하지 않으나 브랜드 인지도로 보았을 때 아무래도 헤리티지 리갈보다는 퀄리티가 우수한 것이 아닐까 싶다. 잘란 스리와야는 헤리티지 리갈을 대체할 구두로 각광받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좋은 인상을 받지 못했다. 그저 헤리티지 리갈과 동급 정도로만 느껴진다.
2. 라스트뿐만 아니라 브랜드 자체에 대해서도 논점이 있다. 일단 널리 알려진 바대로는 일본의 브랜드 '리갈' 의 금강제화 라이센싱이나 로고의 창립연도가 다르게 표기되어 있다는 점으로 인해 8 무단 도용일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 라이센싱을 시작한 년도를 헤리티지 리갈의 로고에 기입한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만약 세우깡이나 바카스같은 경우와 같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3. 금강제화에서는 본격 고급 브랜드로 만들기 위해 오더 메이드와 스페셜 에디션을 진행하고 있다. 다만 2번의 문제가 결부될 수 있다.
2011.03.08. 애프터 서비스
10개월 정도의 시간이 지난 이 시점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착용 빈도는 주 1~2회 정도. 그다지 많다고는 볼 수 없다.
관리는 폴리시까지 쓰니 광이 너무 과이 있어 슈크림만 쓰고 있다. 초기에는 키위 액체 구두약을 간간히 사용했는데, 그로 인해 전반적인 색상이 초기보다 많이 짙어졌다.
사진 화이트 벨런스가 안맞는데, 이 정도가 실제 색감에 가장 근사했다. 전반적으로 태닝과 염색이 진행되었다. 사진에서는 제대로 표현이 안됬는데, 베이스 슈크림만 사용했음에도 상당한 수준으로 광택이 생겼다. 초기의 매트 톤과는 분명 달라졌다.
운용해본 결과 생각보다 주름이 잘 생긴다. 가죽 자체의 강성이 좋은 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착화감에서는 이쪽이 아무래도 좋을 것 같다만, 오래 함께하고 싶은 구두의 외관이 쉽게 허물어져 간다는 점이 안타깝다.
연한 가죽은 단순히 주름의 문제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변형이 찾아온다는 점에서도 일장일단이 있으니, 내 발만을 위해 길들여진다는 점은 장점이나 주름과 마찬가지로 형태가 무너져 간다는 점은 단점이다.
좋은 구두는 구두약을 기가 막히게 잘 먹던데, 이건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덕분에 광택이 생기는데 오래 걸렸지만, 지금은 만족스러운 수준이다. 실제로 보면 토도 카운터 만큼이나 광택이 잔잔하다. 확실히 폴리시로 나는 광과 오랜 관리를 통해 생기는 광은 느낌이 다르며, 후자는 전자에 반해 심리적 만족이 훨씬 크다.
창은 저가의 캉가루 밍크 오일로 관리하고 있다. 가죽창이기에 마모를 걱정했으나 생각보다 잘 버티고 있다. 엄청나게 걸어다니는 내게 이 정도면 아주 흡족한 수준이다.
안쪽의 금박은 꽤 지워졌다. 인터넷의 구두 리뷰들을 보면 한참을 신었음에도 마킹이 멀쩡히 살아 있던데 이건 불과 1년도 안되어 꽤 지워져 버렸다. 아마도 구두 안창을 보호하는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이거나 제품 품질이 안좋기 때문 중 하나일 터인데 아무래도 후자일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 이하에서 설명하겠으나 이는 이 구두의 디자인이 처치스 사의 챗윈드 모델을 차용했음에 근거한다. [본문으로]
- 물론 최근에는 잘란 스리와야나 헤링 슈의 구두들이 보급되면서 헤리티지 리갈이 가지는 가격의 이점은 옛말이 된 듯 하다. 다만 헤리티지 리갈의 수급이 쉽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본문으로]
- Good-Year Welt. 영국의 찰스 굿이어가 발명한 공법. 갑피와 창을 기계 바느질로 연결하는 기법. 공정이 늘어나기에 현 시점에서는 소수의 브랜드들만이 사용하는 기법이다(오늘날의 구두들엔 접착제를 사용하여 붙히는 시멘트 제법이 주로 사용된다). 미국의 Alden이나 영국의 Trickers 등의 고전적 형태를 지향하는 브랜드에서 쓰이며 주로 영국형 구두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닥터마틴도 형태상 차이를 보이나 본질적으론 이 제법에 가깝다. 굿 이어 웰트 제법의 장점은 시멘트 기법에 비해 좋은 착화감과(단 좋은 소재와 수준 높은 기법이 동반되어야 한다) 내구성, 변형 감소등이 있다. [본문으로]
- Carf Skin. 한돌이 지나기 전에 도축한 송아지의 가죽. [본문으로]
- 다만 이 디자인에 있어선 논점이 있다. 헤리티지 리갈의 7시리즈에서 자주 회자되는 제품은 각각 '맨체스터, 멜버른, 맨해튼' 모델인데 인터넷 포럼들에서 이 제품들은 각각 '쳇윈드맛, 디플로맷맛, 콘술맛' 이란 닉네임으로 불린다. 이는 이 제품들의 금강 제화의 독자적인 디자인 개발을 통해 나온 것이 아닌 영국 '처치스' 사의 제품들을 차용한 것임에 근거한다. 처치스의 제품들은 우리나라에 금강제화가 유통하고 있다. 과연 기묘한 우연일까? [본문으로]
- 단 현재 금강제화에서는 전창갈이 서비스를 지원하지 않는다.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유니페어에서 서비스를 진행할 예정이라 하던데 현재 시행 중인지는 모르겠다. [본문으로]
- 단 이 스티치 라인은 히든으로도 할 수 있기에 모든 웰트 구두가 외부로 돌출되는 박음선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본문으로]
- 일본 브랜드 '리갈' 은 1880년이나 헤리티지 리갈은 1954년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