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번민기

2011. 2. 27. 18:12잡문/이야기


 염두했었던 '후지필름 파인픽스 X100(Fujifilm FinePix X100)' 의 발매 스케쥴이 나왔는데, 3월 7일에서 13일 사이에 발매되는 것까지는 좋으나 가격이 159만 8천원에 책정되었다는 점이 참담하다. 당연히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수량 안정화가 되면 가격이 떨어지기는 하겠다만 이 정도의 발매가라면 아무래도 하반기까지도 100만원대 언저리는 방어하고 있을 듯 싶다. 
 
(역시 미녀를 만나는 일에는 돈이 많이 든다.)

 당초 100만원 초반대리란 예상가만 해도 성능 대비 비싼 감이 있었기에 최종 발매가는 가히 경탄스럽다. 물론 첫눈에 매료되게 만든 아주 특별한 외모를 가지고 있기는 하다만. 그리고 이런 류의 물건들에 붙는 가격에 가장 큰 당위성이 그것이긴 하다만 눈에 밟히는 강점이 그것 뿐이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카메라의 제1 명제는 '감성을 충족시키는 장신구' 가 아닌 '사진을 찍는 도구'  이기에, 단순 성능만 놓고 보았을 때 그다지 특별한 구석까지는 찾아볼 수 없는 카메라에 비상식적인 금액을 지출하는 행위를 스스로에게 용납시키는 일은 어려웠다. 그렇다. 짧게 말해서, 포기했다. 결국 보는 것은 카메라가 아니라 사진이지 않겠는가. 

 참담한 마음을 부여잡고 대안을 찾다보니, 새로운 물건들이 눈에 보였다. 다만 이번에도 SLR은 배제했다. 일단 바디의 덩치가 크다는 점이 걸리고, 원하는 수준의 바디는 가격이 비싸다는 점 때문에 고려 대상에도 오르지 못했다. 

 결국 마이크로 포서드 등의 소형 카메라와 좋은 렌즈의 조합을 찾게 되었다. 바디는 상향 평준화가 되어있다 보니 대동소이 했기에, 일단은 렌즈부터 찾아 보았다.


 NOKTON 25mm F0.95. 마이크로 포서드 마운트다. 가격은 100만원. 일단 가장 끌리는 렌즈다. 아는 바 내에서는 가장 밝은 렌즈란 점이 좋은데, 조도가 낮은 곳에서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 같고, 심도가 아주 얉은 사진을 찍을 수 있으리란 전망이 있다. 그리고 화각이 환산을 하더라도 적당한 수준인 점도 매력적이다. 단점이라면 바디 만큼이나 덩치가 크고 무거운 것.


 다시 카메라를 찾기 시작하며 가장 먼저 눈에 뜨인 것은 보이그랜더(Voigtlander) 의 렌즈들. 이하의 물건들도 다 동사의 물건이다. 광기어린 스팩의 물건들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대로 내놓는다 점이 아주 매력적인 업체다. 본디 라이카 렌즈로 유명한 곳인데 마이크로 포서드용 렌즈(비록 하나 뿐이지만)와 컨버팅 아답터를(VM, M, L마운트 - 포서드, E마운트) 발매하였기에 바디를 마이크로 포서드로 한다는 전제에서는 최상의 조합으로 보였다. 
 


 NOKTON 50mm F1.1. 이 것도 좋은데 몇 가지 걸리는 점이 있다. 일단 VM마운트여서 컨버터가 있어야 하는데 컨버터가 25만원인게 문제. 그리고 무엇보다도 화각이 50mm 다 보니 1:1.5 의 소니 E마운트나 1/2 마이크로 포서드 바디에서는 편리한 화각 확보가 안될 것이란 점. 여러 렌즈를 가지고 다닌다면 모르겠으나 나처럼 최대한 가벼운 짐을 선호하는, 즉 카메라와 하나의 렌즈만을 들고 다니길 원하는 사람에게 범용으로 사용하기 힘들다는 점은 큰 문제다. 가격은 120만원.


 바로 이거. VM Micro Four Thirds Adapter. 가격이 25만원. 이미 라이카용 랜즈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면 활용도가 높겠다만, 나처럼  하나의 랜즈를 위해 구매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가격이다. 다만 이것을 구매할 경우 아래의 랜즈에 대한 가능성도 열리게 되니……


 Ulta Wide-Heliar 12mm F5.6 Aspherical 2. 무려 12mm 초광각이다. 포서드 환산에서는 풀 프레임 만큼의 압도적인 만족은 아니겠다만 나름 충분히 만족스럽게 쓸 수 있을 것 같다(이걸 M9 같은 풀 프레임에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만 돈이…… 돈이……). 다만 제법 조건이 복잡한데, L마운트여서 마이크로 포서드에 쓰려면 'M바요넷 아답터 링(LTM)'이란 부품과 변환 아답터를 다 써야 한다. 가격은 120만원. 


M Bayonet Adapter Ring. 이게 보시다시피 8만원. 결국 12mm 렌즈를 마이크로 포서드에 사용하려면 150만원 정도가 든다. 12mm 쓰기는 참 어렵다.

 렌즈는 이 정도. 여기서 마이크로 포서드 마운트로 가느냐 소니 E마운트로 가느냐의 문제가 남아있는데, 전자의 경우 파나소닉의 저렴한 렌즈들을 쓸 수 있다는 장점과 마음에 드는 생김새의 바디가 하나도 없다는 단점이 있고, 후자의 경우 넥스(NEX) 시리즈의 작고 가벼운 바디를 쓸 수 있고 어짜피 어답터를 쓸 것이란 전제 하에 장래 라이카 랜즈들을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는 장점과 전혀 마음에 안드는 조작을 참아야 함과 돈이 '억수로' 내게서 탈출해나갈 것이란 단점이 있다.

 고려하고 있는 바디는 이하와 같다. 다만 워낙 유명한 물건들이다 보니 상세한 설명은 배제한다. 성능도 관심있는 부분만 추렸다.


Sony NEX-5. 1420만 화소. 1:1.5 APS HD CMOS. 229g
 NEX-3도 성능은 비슷하나 무엇보다도 바디가 플라스틱이란 점이 참을 수 없어 탈락시켰다. 일단 기본 성능은 마이크로 포서드쪽 보다 이쪽이 우월해 보인다. 그리고 다양한 랜즈 컨버터가 있어 향후 라이카 뿐만 아니라 소니 A마운트, 니콘, 팬탁스, 캐논 랜즈도 써 볼 여지가 있다. 다만 작고 가볍다는 점 외에는 아무 것도 마음에 안드는 디자인과 대다수의 조작을 디지털로 해야 한다는 점이 걸린다. 가격은 바디만 60만원대 중반인데, 만약 구매시에는 10만원 정도 추가하여 16mm 팬케잌 랜즈 세트로 가는 것이 적합할 것 같다. 


Panasonic Lumix GF2. 1210만 화소. 포서드(35mm 대비 1/2). 비너스 엔진. 265g.
 마이크로 포서드야 이제는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보니 성능 자체에 대해서는 딱히 논할 거리가 없이 준수하다. 그나마 향후 컨버전 렌즈를 사용할 것을 염두할 때 1/2 이란 환산이 좀 걸리는 정도? 문제는 정을 줄 여지 자체가 없는 디자인과 NEX와 마찬가지로 많은 부분을 디지털로 다루어야 하는 조작. 가격은 바디만 50만원대 중반인데 만약 이것을 구매할 시에는 바디만 단독 구매할 생각이다. 


Olympus Pen E-P1. 1210만 화소. 포서드(35mm 대비 1/2). 335g
 후속 기종들이 나오긴 했다만 옆그레이드이기 때문에 가장 저렴한 이쪽이 좋다. 성능 자체는 GF2와 대동소이하며 소프트웨어 필터같은 자잘한 기능들이 많아 재미있게 다룰 수 있을 듯. 외관의 경우 많은 지지를 받은 디자인이기는 하나 개인적으로는 레트로와 모던 사이에 걸친, 애매한 감이 커 그다지 이뻐보이지는 않는다. 가격은 바디만 40만원. 역시 구매시엔 바디만 살 생각이다.


Epson R-D1s. 600만 화소. 1:1.53 CMOS RF. 
 일단 이건 마이크로 포서드가 아닌 RF다. 그리고 늘 관심을 두고는 있다만 선듯 손이 안가는 물건이다. 나온지 6년 가까이 된 카메라를 최신 SLR에 비등한 가격에 구매할 가치가 있는지에서 머뭇거리게 된다. 오래된 기종이기에 최신예 기기들에 대비되는 성능과 편의성의 문제, 게다가 단종되었기에 중고로만 구할 수 있다는 점은 물건의 상태에 대한 근저의 불안을 남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미련을 버리지 못하게 하는 점은 라이카와 완벽 호환되는 RF란 점과 모든 단점을 덮어두게 만들 만듦새와 디자인. 마치 기계식 시계의 크로노그라프를 보는 듯한(실제 작동도 비슷하다) 상단 표시창. 한 컷을 찍을 때마다 다시 감는 맛을 살린 와인딩 레버. 나온지 30년은 되보이는 투박한 바디 디자인. 그리고 애써 디지털 카메라임을 감추려 플립이 되는 후면 LCD 까지. 이러나 저라나 늘 고민을 거듭하게 하는 카메라다. 가격은 중고가 150만원 언저리. 



 사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카메라만 하더라도 사진 품질에서는 하등 불만족스러운 것이 없건만, 조금씩 모자란 부분들을 채워보고자 오늘도 이렇게 번민하고 있다. 자본주의에서 소비가 미덕이라면 난 굉장히 도덕적인 사람이다. 기업들이 시키는대로 잘도 따라가고 있다.

 아마도 상반기가 가기 전에 새로운 카메라를 들일 것이다. 개인적인 기대를 저버린 X100 때문에 조금 늦춰졌지만 조만간 카메라를 한 대 들이게 될 것이다. 그 때 다시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