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rrell Williams

2010. 12. 30. 03:04잡문/이야기


 참 애매하다.  일단 성의없게 만드는데는 일가견이 있으니, 괴테는 파우스트는 60년동안 썼다는데, 퍼리얼[각주:1]은 6분이면 곡을 만든다.  덕분에 샘플링과 미디의 배열이 제법 단순하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에 착착 감긴다는 것.  한없이 유려하고 신난다.  

 허나 그의 곡을 듣고 버브의 '비터 스윗 심포니' 을 들었을 때 만큼의 경탄을 느낀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좋긴 하다만 완벽하진 않고, 완벽하진 않다만 모자라지 않은 정도.  앞서간다고는 하지만 판을 갈아 엎을 정도는 아니고, 그렇지만 한번도 뒷쳐진 적은 없는 정도.  역시나 애매하다.

 솔직히 이렇게 뜰 줄은 몰랐다.  게다가 이렇게 오래갈 줄은 상상도 못했다.  퍼리얼이 등장할 무렵엔 팀버랜드나 스윗즈 비츠같은 거성들이 큰 판을 나누어먹고 있었다 보니 그저 지나가는 필부 정도로 생각했었고, 어느 정도 탄력을 받을 무렵엔 곧 잊혀질 '클럽 튠 마이스터' 정도로 생각했다.  결국 음악판은 한치 앞을 못 읽는다.  이렇게 거성이 될 줄이야.  내가 다 좋아하게 될 줄이야.

 결국 퍼리얼은 참 애매한 아티스트다.  리스너의 입장에서, 좋아하긴 하는데 경배하는 정도는 아니고, 그러면서도 신작이 나오면 다 찾아 들어보게 되는 오묘한 관계에 있다.  포스팅하는 입장에선, 포스트를 꼭 쓰고 싶은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그냥 넘어가기에도 아쉬운 정도.  참 어정쩡하다고 무의미하긴 하나 오래간만에 지나간 힙합 앨범들을 듣다가 한번은 적어보아야 할 것같아 글을 남긴다.

 다만 나같은 라이트 리스너가 소개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유명하고, 아래에 단 곡들도 워낙 유명하다 보니 걸어놓는 의미가 퇴색하는 감이 크다.  그저 한번 더 들어보는 맛으로 봐 주시라.  글은 안 읽으셔도 된다.

 워낙 참여한 곡이 많다보니 들어본 곡만 나열해도 열 포스트는 나올 것 같지만, 개중 참 근사하게 들렸던 곡 몇 곡을 소개한다.  아시다시피, 모두 누군가와 함께 한 곡이다.  그리고 다들 유명한 곡들이다.  그만큼 퍼리얼이 컨템포러리 힙합씬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은 대단하다.  이렇게 될 줄이야…….

 서두를 쓰고 나서 알게 되었다.  퍼리얼의 음악과 내가 이렇게 불편한 관계에 있을 줄이야…….

 

Pharrelll Williams Featuring Gwen Stefani / Can I Have It like that / In My Mind

 이 무렵까지 넵튠스나 N.E.R.D 의 이름으로는 활동했으나 자기 이름만 걸고 진행한 프로젝트는 일련의 작곡들 밖에 없었기에, 큰 기대를 모았던 그의 독집 앨범 타이틀 곡이다.  킬링 트랙을 아주 적합했으니, 퍼리얼 자신에 대한 기대치도 높은데 스카 펑크 밴드의 보컬인 그웬 스테파니를 데려와 이런 곡을 만들었다.  그것도 아주 미니멀하게 써먹으면서.  앨범 전체의 평은 그다지 좋지 못하다는게 중론이지만, 적어도 이 트랙까지는 아주 박진감 넘친다.  장중하게 흘러가다 갑자기 멈춰버리는 흐름도 재미있다.  문제는 이게 1번 트랙이란 점.



 Jay-Z Featuring Pharrell Williams / Blue Magic / American Gangster

 이미 몇 번의 작업으로 성공적인 반향을 얻었던 제이-지와의 곡.  작곡가 목록을 봤을 때 작심하고 만든 컨셉 앨범에 퍼리얼의 곡은 어색하지 않을까 싶었으나 막상 결과물은 앨범의 흐름에 잘 부합했다.  충분히 깊게 깔리며 묵직하다.  그리고 평소와는 다른 제이-지의 랩핑도 재미있다.  이 무렵 한참 잘나가던 퍼리얼이다 보니 제왕 제이-지의 평소 랩 스타일과는 다른, 이런 분절적인 랩을 요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제이-지가 이렇게 랩하는 곡은 나름 드물다.



Common Featuring Pharrell Williams / Universal Mind Control / Universal Mind Control

 곡 구조나 성의 없음에 별 차이가 없긴 하나, 그 풍이 평소와는 제법 다르다.  이런 곡은 커먼에게도 새로운 느낌인데, 이전에 다루던 곡과는 제법 상이하다.  새로운 시도라 느껴 듣는 즐거움이 삼삼했다.  그러면서도 너무 전위적으로 빠지지 않는 적절한 벨런스도 눈여겨 보아야 할 점.  카니예가 이런 시도에서 늘 앞서가긴 하다만 솔직히 그의 최근 곡들은 너무 어려운 감이 있다.  라디오 헤드와 비슷하다.



 Snoop Dogg Featuring Pharrell Williams / Drop it Like It's Hot / Rhythm and Gangsta The Masterpiece

 전세계 클럽에서 하루 3~4번씩 나왔었고, 지금도 이동네 클럽에서 울리고 있는 곡.  덕분에 전형적인 퍼리얼 스타일이 되어 버렸다.  위트있는 샘플들로 아주 단순하게 구성한다.  그리고 간간히 터지는 미디음.  전형적인 퍼리얼 스타일의 전형이 이 곡이 아닐까 싶다.      
 이 무렵 마왕 스눕 독은 그가 한참 마음에 들었는지 늘쌍 달고 다녔고, 이런 물건들을 몇 개 더 내놓았지만 역시나 이게 가장 좋다.  이러나 저러나 퍼리얼이 지금의 위치에 올라오는데는 스눕 독의 힘이 컸다.  앞의 제이-지도 그렇지만, 역시 최고들은 옥석을 구분할 줄 안다.  나는 그게 안된다.  아…….



 P. Diddy, Lenny Kravitz, Pharrell Williams, Loon / Show Me Your Soul / Bad boys 2 Original Sound Track

 예전만 못하긴 하다만, 유독 우리나라에선 깊게 맛이 간 디디와의 곡.  역시나 예전만 못한 레니 크레비츠가 디디와 친하다 보니 여기에 엮였다.  룬은 누군지도 모를 정도고.  그래서 그런지 그다지 흥행한 곡도 아니긴 하다만 그렇다고 곡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멜로디가 거세된 듯한 반주에서 보컬들의 퍼포먼스는 최상으로 부각된다.  디디의 랩, 크레비츠의 샤우팅, 페리얼의 백보컬, 룬의 브릿지가 명료하게 귀에 들어온다.  보컬을 돋보이게 해준다는 점.  바로 이게 퍼리얼 곡의 가장 큰 장점 아닐까.


 이건 덤.  이 한장의 사진 때문에 우리나라에는 매장도 없는, 입소문만 타던 'A Bathing APE' 가 대단한 인기를 끌게 되었었다.  아직도 스트릿 패션 씬에서는 소위 '레전더리 짤방' 으로 불린다.

  1. 우리나라에선 '패럴' 이라고 읽는다만 배철수 선생님 따라 그들이 읽는대로 쓴다. "마돈나가 아닙니다. 머다나 입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