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 3

2009. 10. 16. 21:51잡문/일기는 일기장에


 몇일 감기와 사투를 벌이면서 한 생각이 너무나 많은 전제를 깔고 가면 나중에 불현듯 떠오른 글을 개시하지 못하거나, 혹은 전제를 어기는 결과에 도달할게 명약관야란 것이었다.  'Be 2' 에서 다룬 전제들은 앞으로 글을 써나갈 때 형식미를 갖추게 하는 좋은 갑옷들이 될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몸을 조르는 밧줄이 되리라는게 더 컷다.  그리고 어디까지 개인적인 글을 다루는 곳인데도 객관적 기치란 목표설정에 마음 졸이고 있었던 것도 사실 불필요하단 결론에 도달했다.  사유는 자유롭게 전개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이 내가 글을 쓰는 목적보다 더 크고 중요한 살아가는 목적이다.  그리고 포괄적인 삶에 일관되게 적용해야 하는(적어도 그러고 싶은) 가치다. 

 하지만 늘 공포는 과도한 개방이 원치않는 현상을 초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어슴프레한 그림자였다.  적어도 단순한 일기장으론 만들고 싶지 않음많은 앞에서 말한 자유에 대한 수호의지 만큼이나 분명하다.  첫 글에서 말했던 것처럼 또 하나의 싸이월드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 개인 미디어가 추구해야 될 방향을 밟아나가야 한다는 것은 불분명한 대상을 바라보는 명정한 공포로 잊혀지지 않고 남아있다.

 결국 'Be 2' 에서 적었던 전제들은 대부분 갈아엎으려 한다.  설정해선 안될 무리한 목표를 설정했음이 분명하다고 자체판단하고 다시 새로운 방향의 고민을 반복하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가?  수많은 고민과 수많은 포기, 수많은 새로운 착상들은 멍하게 웅웅거리는 감기의 잔상으로 머리속을 돌아다닌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이런 다양한 고민들이 보다 나은 글을 만들어줄 것이란 맹신적인 믿음은 변치 않았다는 것.  그리고 조금씩이나마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조건들이 떠오른다는 것.
 
 이건 꼭 설정해야 하고 설정하더라도 무리없이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믿은 전제들도 몇가지 떠올랐다.(물론 이것들도 나중에 돌이켜보면 어느세 잊어버리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될 수 있겠지만)

 첫 설정은 되도록이면 내가 쓰고 내가 찍은, 내가 생산할 수 있는 컨텐츠들을 다루려는 것.  어딘가에서 얻어오는 컨텐츠는 저작권 문제도 있고 새로운 정보에 취약하단 개인적 능력미달의 문제도 있기에 내가 직접 다루고 있는 것들을 통해 얻은 인상과 관념들을 다루려고 한다.  이것만은 가능한한 지켜나가려 하는 기본틀이다.

 두 번째는 정적인 컨텐츠를 다루지만 소탈한 문체를 잊지 말자는 것.  냉소적인 글을 쓴다는 건 전문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지만 가치가 있을터인데 내가 아무리 안다 하여도 그 분야를 업으로 사는 분들에 비하면 비교가 안될 것이기에 적어도 글이 어느정도 쉽게 이해되면서 재미있게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전개해보려 한다.  블로그가 가져야 할 매력이 필요하단 걸 인식했다.

 세 번째로 'Be 2' 와는 반대되는 설정으로 어떠한 장르에 크게 구여되지 않는 글을 쓰자는 것이다.  특정 범주에 글의 방향을 한정시키면 새롭게 전개하고자 하는, 혹은 갑자기 떠오르는 기발한 착상들을 꺼내볼 수 없게 될 것이고 그 것은 적어도 '내가 만드는 미디어' 란 가치에 부합하지 못하는 문제다.  그렇기에 특정 범위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그리고 넓은 범위를 다루려고 한다.

 네 번째는 앞에서 설정한 전제들과 연관된다.  다양한 방향의 글들을 다루더라도 생활에서 다루는, 그리고 내가 관심있는 주제들을 다루려는 것이다.  적어도 분명한 건 좋아하고 밀접한 것들을 다뤄야지만 원하는 글이 나오리란 것이다.  생활에서 얻는 다양한 모티브들을 글에 적용할 것이다.

 다섯 번째로 작업이 오래걸리더라도 완성도 있는 글을 적고 한번 포스팅 하면 되도록 수정하는 일이 없게 하잔 것이다.  대부분의 완성도는 맞춤법과 문장 구조에서 결정될 터이니 두번, 세번 돌이켜보는 과정을 거치더라도 되도록 형식에 부합할 수 있는 글을 쓰려 노력할 것이다.

 제법 심각한 컨디션 난조속에서, 세 번째 고민은 이런 결과들을 남겼다.  자평하기엔 이전에 했던 고민의 결과보단 필요하고 자유로운 전제여서 만족스럽다.  앞으로도 고민들은 계속 찾아올 것이고 지금까지한 고민들과 함께 보다 윤택한 글들을 만들어 줄것이라 믿는다.(설사 그것이 맹신에 불과하더라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확실히 정한 건 더 이상 글을 쓰기 전에 고민하기 보다 글을 써 나가면서 동시에 고민하려 한다는 것이다.  몇 주간의 고민 기간에도 확연한 구조 설정은 요원하기만 하다.  이렇게 차일피일 개시를 미루기 보단 글을 써 나가면서 갈 길을 가다듬어 가는게 낳을 것 같고, 또 그렇게 하려고 한다.  

 이제부터 시작하려 합니다.  적은 기대와 적절한 비난과 많은 용서 부탁드립니다.  보잘 것 없는 블로그에 들려주시는 하루 4~5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