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면 수트를 입습니다

2010. 5. 31. 05:07옷/외출



 이게 좀 사정이 있습니다. 수트 입문자이다 보니 늘 수트를 입고 싶긴 하나 평소엔, 그러니까 하늘이 맑을 땐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다니다 보니(게다가 로드 바이크형 자전거 입니다) 수트를 입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비오는 날에라도 수트를 입습니다. 장우산과 브리프케이스를 들고 걸으면 나름의 운치도 있구요.  

 자전거를 접던가 학교를 접던가 수트를 접어야 해야 할 터인데, 셋 다 버릴 수 없다보니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지요. 취미는 하나만 두어야 한다는 걸 자주 느낍니다.

 사진의 수트는 어려보이고 싶은 욕심에 드롭수를 너무 크게 둬 라펠이 좀 굽어버렸습니다. 그래도 만족하고 입고 다닙니다. 날씬한 핏, 글렌 체크, 피크드 라펠의 조합이여서 즐겁게 보이고, 수입 브랜드 원단은 아닙니다만 나름 타즈마니아 울이라서 유연하고 가볍습니다. 춘추복이여서 요즘엔 쉬고 있는데 날씨가 조금만 쌀쌀해지면 한번 입어볼까 고민하게 됩니다.  

 오른쪽 후배의 착장은 유니클로 풀 셋입니다. 유니클로는 매번 놀라게 합니다. 재킷의 경우 원형이 완전히 자리잡았는지 적어도 핏에 있어선 중저가 기성복 중 최고 수준입니다. 셔츠도 디테일과 부자재를 제외한, 소재와 핏만 놓고 본다면 충분히 좋아요. 악세서리는 좀 깨는 경우가 많은데 일단 보기엔 그럴싸해 보입니다. 유니클로에서만 잘 골라 입어도 충분히 멋져보일 수 있습니다. 어느 경우에서나 마찬가지이긴 합니다만, 약간의 모자람을 충족시키고자 현격한 가격차의 물건을 지향하게 되긴 합니다. 완벽하게 마음에 드는 물건을 지향할 것인지, 혹은 적당한 수준에서 타협할 것인지는 취향의 문제입니다. 다만 조금만 눈을 낮추면, 유니클로로도 충분히 좋습니다.

 비오는 날의 착장은 정석대로라면 참 어려운 편입니다. 널리 알려져 있다 싶이 수트의 소재인 울과 구두의 소재인 가죽은 습기에 취약하지요. 그래도 당분간은 비오는 날에만 수트를 입게 될 것 같습니다. 뭐 어떤가요?  내가 좋은데.

 덤. 라펠을 업계 용어로 '에리' 라고 하고 뻣뻣하게 형태를 살아있는 감을 '고시' 라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두 단어를 조합한 '에리고시' 란 단어가 있는데 라펠 안감의 하한선, 즉 첫 번째 버튼의 위치를 말합니다. 재미있는 건, '에리' 는 정식 용어가 아니고 '고시' 는 정식 용어입니다. '고시' 는 옷의 평가 기준으로 일본의 학자가 제시한 단어인데 딱히 대체할만한 단어가 없어 원어가 그대로 쓰이고 있습니다.  쓰일 때는 '고시-감' 이라고 쓰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