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약수동 머거보까 매운 갈비찜

2010. 1. 3. 02:27잡문/돌아다니다



 유독 매운갈비라면 인연이 없었다.  매운갈비에 대한 환상이 머리속에 만연하여, 그런 만큼의 시도도 있었건만 딱히 즐겁게 남아있는 기억은 없었다.  다들 조미료 구덩이에 아까운 갈비를 쳐넣거나, 매운갈비라는 명제에 부합하지 못하는 대중친화적인 맛으로 실망케 하였었다(솔직히 개중 괜찮았던 경우도 있었으나 '매운갈비의 이데아' 에 근접하는 경우는 아니었다).

 성탄절을 맞아 방문한 서울, 그것도 지친 몸을 누이기 위해 찾아가던 외가댁의 근방에서 이런 집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예전에 외삼촌과 함께 이 골목을 찾았을 때 번성하고 있던 고깃집들이 기억에 크게 남았고 이 골목을 다시 찾게 하였다.  그리고 이전에는 미처 신경쓰지 못했던 매운갈비집을 찾았고, 유독 매운맛에만 민감한 혀를 충족시켜주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과 함께 시도하게 되었다.  그리고 결과부터 말하자면, '매우 만족스럽다.'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이 집의 매운갈비찜은 매우 자극적이고 선정적이다.  이 집에 도전하기 위해 가는 날엔 체력상태가 좋아야만 한다.  내가 시도했던 날은 워낙 지쳐있었기에 그 강력한 돌진에 튕겨져 나뒹굴며 애꿎은 수자원만 2리터 정도 소모했다.  반드시 풀 컨디션 상태에서 이 집을 시도하길 권한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세상에 이것보다 매운 음식은 얼마든지 많다.  하지만 안 매운 음식은 그것보단 만배는 많을 것이다.  현세에서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음식이니 단단히 칼을 갈고 가야 한다.

 다만 매운맛만 넘치면 그건 '매운' 음식이지 결코 '맛있는' 음식은 아니다.  그런면에서 이 집은 충분히 합격점을 넘는다.  간마늘을 충분히 넣은 깔끔한 맛인게 가장 먼저 혀에 느껴지며, 각 맛의 감도들이 죽지 않고 예민하게 반응한다.  음식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기를 잊지 않으면서 매운맛을 갖추고 있으며, 그렇기에 이 집의 매운갈비찜은 '외식' 이란 이름에 명실상부하고 있다.  적어도 집에서 해 먹는 것보단 맛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도 불만은 있다.  바로 양이다.  일인분 구천원에 기본은 인원대로시켜야 했기에 2인분을 시켰으나 결과물은 1인용 라면냄비에 담겨 나왔다.  원체 고고한 가격이 특성으로 붙는게 매운갈비찜이란 장르이긴 하나 생각보다 적은 양은 일단 시각을 실망시킨다.  술안주로 먹기엔 적당한 양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약수시장 골목을 찾아서 깔끔하게 갈비 몇 쪽 뜯고 집에갈 순 없지 않겠는가?  빈 소주병이 바닥에 깔리도록 질펀하게 놀다가 가는게 어울리는 골목이련만 이런 양은 아쉽기만 하다.  혹은 내 지갑 사정이 아쉽기만 하다.

 식성이 적당하시거나, 혹은 재력이 충만한 걸로 양이란 문제를 무시할 수 있다면 이 집은 약수동(근데 행정구역 편성이 변했는지 약수동이 아예 없어지고 신당3동으로 되어 있다.  서울은 알 수 없는 동네다.)의 명가로 손꼽히기에 부족함이 없다.  매운갈비를 좋아하거나, '매운' 을 좋아하거나, '갈비' 를 좋아한다면 찾아보길 권한다.  그리고 그게 아니더라도, 지루하고 쓸쓸한 겨울밤을 불태워 줄 촉매는 클럽에만 있는게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다. 


 
 위치는 지도와 같다.  약수역에서 내려 약수시장으로 가면 언덕아래에 식당골목이 있다.  그 중에 2층에 큰 간판이 걸려 있는 집이니 눈에 쉽게 들어올 것이다.  오래된, 소위 '허름이' 식당은 아니니 눈에 잘 들어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