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서울유람기 02. 서울대 입구 지구당

2010. 7. 8. 03:25잡문/돌아다니다

 거진 유일하게 주기적으로 와 주시는 8층님의 블로그를 보고 마침 고시원 근방에 있는 곳이여서 찾아갔다.  결론은...  가끔은 이런 식당이 있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정도.  이곳은 정말 뭔가 다르긴 다르다...  아아...


 큰길가에서 먼 편은 아니지만 좁은 골목길에 숨어있는대다 사진으로 보시다시피...  이렇다.  그냥 보면 영업하고 있는 식당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관경.  한번에 이 곳을 알아보게 된 까닭은 사진을 미리 보고 간 까닭도 있지만 이 작은 가게 앞을 줄서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때문이다.  도대체...  그 곳은 무엇이 기다리고 있길래 줄까지 서야만 한단 말인가?   


 이거 참 특이하다.  벨을 누르고 자리가 있는지를 공손하게 여쭈어야만 문이 열린다...  밖에서는 문이 안열린다.  이렇게 선명하게 불친절한 점은 오히려 매력적이다.   


 메뉴는 하루에 하나만.  화목토는 규동, 수금은 오야꼬동이다.  8층님은 오야꼬동을 자시고 오셨고 내가 간 날은 규동이었다.  다행히 나도 규동이 좋다.  스키야에서 먹던 기억이 아쉬워 이곳저곳을 찾아봤으나 그 맛만큼 내는 곳을 찾지 못해 낙심하고 있었는데(심지어 내가 차릴려고도 생각 중) 지구당은 보시다시피 뭔가 있어보이는 집인만큼 근사한 결과가 있기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참고로 이 집은 조용한 공간이 되기를 원하고 있다.  원하다고 미루어볼 수 있는 건 입구에 그렇게 적혀있기 때문.  그렇기에 3인 이상은 받지도 않는다(혹은 테이블이 적은 것 때문이라 생각됨).  실지로 들어가보면 속삭이면서 말하는게 기본.  서빙받는 분도, 요리사 분도 말이 없다.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할만한 분위기.  나도 이런게 좋다.

 참고로 규동은 소불고기를 올린 덮밥, 오야꼬동은 닭고기와 계란을 올린 덮밥이다.  그리고 정확하게 내가 좋아하는 건 돼지고기를 올린 부타동인데 이건 우리나라에서 파는 곳이 없다.


 아주아주 단순하고 직관적인 인테리어를 갖추고 있다.  오래된 음식점의 느낌.  여기에 지저분하면 딱 배달 중국집이다.  그리고 사진엔 안나왔으나 의자가 달랑 6개.  최대 수용인원도 당연히 6명.  식사시간에 오면 한 이십분 기다리는 건 당연한 의례다. 


 한마디 없이 요리만 하시는 요리사님.  아무래도 사장님인 것 같다.  끝까지 한마디도 없으셨다.  그리고 서빙을 받아주시는 분도 계산할 때와 주문할 때 잠시만 작게 말씀하시고 평소엔 말이 없으시다.  그러다보니...  손님도 말이 없다.

 규동은 3500원.  규동에 비벼 먹으면 맛있는 반숙계란은 1000원.  반숙계란은 호불호가 갈리는 아이템이다 보니 없이 먹어도 무방하다.  맥주도 있는데 아사히가 아마 오천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밥을 먹으며 맥주가 어울릴까 싶으나 실지로 마셔보면 아주 잘 어울린다.  이날은 갈 길이 멀어 안마셨다.  
 

 인트로가 너무 길었다.  드디어 음식이 나왓다.  이건 반숙계란을 얹은 모습.  일단 고기가 수북하게 덮힌 건 맘에 든다.  고기와 여자는 많을수록 좋다는 건 은나라 주왕때부터 만고의 진리이다 보니 이건 참 좋습니다.  

 그리고 미소시루.  다른건 모르겠고 이 집은 미소시루가 참 아름답다.  대다수의 식당들이 제법 성의없는 미소시루를 내놓는데 비해 이 집은 간도 잘 맞고, 이런 표현이 느끼하긴 하다만 바디감도 묵직하다. 

반찬은 깍두기와 초생강.  별 건 없어요...  후리카케리라 기대했던 조미료는 고춧가루였다.  왜 우리나라 덮밥집들은 후리카케를 구비하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으니 덮밥에서 이거 참 중요하다.  이거 깔면 맛이 괜히 아름다워진다.  혹시나 이걸 보신 덮밥집 사장님은 후리카케를 꼭 준비해 두세요.

 드디어 본식 리뷰.  계란을 테이블 앞에 놓여있는 설명대로 살짝 풀어 겉에만 얇게 비벼 먹으면 된다.  그리고 고기와 밥을 완전히 비벼 먹는 것보단 반찬이 덮힌 밥을 먹는다는 느낌으로 살짝살짝만 걷어가며 먹는 것을 권한다.  그리고 이 집은 밥 자체가 괜찮은 편이니 그 텍스처를 뭉개는 건 아쉽다.  섬세하게 드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맛은...  솔직히 많이 써도 쏘쏘...  기존의 라이트 일식 브랜드의 덮밥에 비해 그 깊이는 충분히 좋은 편이고 완성도도 높다.  하지만 아무래도 밍밍한 맛이 걸린다.  일식이며 요리사의 성향에 인해 그럴 순 있겠다만 내 입맛엔 아무래도 밍숭맹숭한 맛이 걸려 마음도 싱숭생숭해진다.  이건 뭔가 이상하다.  지구당을 소개하고 있는 블로그 대다수가 그 맛에 만족했던 것에 반해 난...  말 그대로 그냥 그렇다.  차라리 맛이 없다면 욕이라도 하련만 이건 말 그대로 그냥 그렇다.   그렇다...  그냥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당 자체가 묘한 중독성을 가지고 있고(미소시루를 잘한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 집앞에 있다보니 자주 찾아갈 예정.  어제는 오야꼬동 하는 날이여서 가려 했으나 앞에 줄이 너무 길어 포기하고 한솥도시락을 사먹었다.  무엇보다 고립무원에서 자취중이다 보니 혼자 밥을 먹는 일이 많은데 이 집은 둘이 가는게 더 이상한 느낌의 식당이다 보니 편안하게 갈 수 있어 자주 갈 예정이다. 

 인터넷엔 이 정도의 평도 없다보니 이 글을 보고 '이 집 후진거 아닐까?' 라고 생각하는 분들께 말씀드리자면 절대 그런 거 아닙니다.  ~~야로 끝나는 여타 일식 체인점들의 덮밥보다 비교적 준수한 퀄리티를 덮밥을 자실 수 있으니 기회되시면 한번 찾아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나처럼 많은 기대를 하고 가면 안돼...  후회해...  그리고 가서 줄 선 사람들 때문에 기대해도 안돼.  그냥 그러려니 해...

서울대 입구역 2번 출구에서 나와 서울대 쪽 언덕으로 5분 정도만 올라가다 보면 골목길 틈에 바로 보인다.  가계가 작고 눈에 잘 띄진 않는다.  그래도 식사시간에 가면 골목길에 다짜고짜 줄을 선 사람들이 보이기 때문에 쉽게 찾을 수 있다.  9시까지 영업하고 일, 월요일은 휴무.

P.S 오늘 찾아가니 수용인원이 9명 이었다.  점심때와 저녁때의 수용인원이 다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