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만화를 보자.

2011. 6. 8. 03:17두 바퀴/이야기


0. 다양한 서브컬쳐를 주제로 한 만화들이 나오는 일본이다 보니 자전거 만화도 당연히 있다. 확인한 바로는 두 바퀴의 기적 린도, 겁쟁이 페달, 오버드라이브, 스피드 도둑, 나스, 내 파란 세이버, 오즈(Odds) 정도가 있는데, 이들 중 본 작품에 대한 인상을 적는다.



1. 오버드라이브. 쯔요시 야쓰다 작. 

 건 그림은 애니메이션이지만 본 것은 만화책이며, 만화책을 기준으로 적는다. 로드 싸이클링을 테마로 잡고 있지만 아무래도 '본격 자전거 극화' 보단 '자전거를 테마로 한 청춘물' 에 가깝다. 청춘물이 늘 그렇듯 자존심 쌔고 능력 좋은 청년들이 나와 심오한 경쟁을 펼친다. 그리고 투박하지만 풋풋한 로멘스도 살짝 끼어든다. 다만 그렇다고 한들 자전거 자체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며 극의 밀도가 부족한 것도 아니기에 어설픈 감이 드는 것은 아니다. 좋은 포텐셜을 가지고 있고, 서서히 성장해가는 주인공을 보면 이런 류의 만화를 볼 때 늘 느껴지는 재미를 다시 느낄 수 있다. 덤으로 작화가 오늘 소개하는 만화들 중 가장 준수하기에, 동시에 순정 만화로 시작해 청소년 폭력 만화로 변화하는 점도 있기에 그림보는 재미도 좋다. 


2. 내 마음속의 자전거. 가쿠 미야오 작.

 장르 만화에서는 좀 특이한 경우이니, 스토리 라인이 있긴 있다만 각 에피소드 마마다 특정한 자전거가 등장하며 그에 얽힌 이야기가 전개되는 옴니버스 만화다. 이 작품을 제외하곤 오늘 소개하는 만화 모두가 그렇고, 대다수의 자전거 만화들이 로드 싸이클 경기를 소재로 하는데 반해 이런 전개는 확실히 독특하다. 아무래도 작가가 로드 싸이클링에 매료된 것이 아닌, 자전거 자체에 매료되었기 때문인 것 같고 만화를 보면 그것이 충분히 느껴진다. 각 에피소드 별로 등장하는 자전거들이 가진 서로 사뭇 다른 차이점을 놓치지 않으며, 편향되지 않은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소소하지만 따뜻한 이야기들이 가득 차 있고, 다양한 자전거들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추천할만한 작품이다.

 다만 구하기가 좀 어려우니, 제법 된 만화다 보니 남아있는 곳이 없을 뿐더러 보유하고 있는 대여점도 쉽게 찾기 어렵다. 나도 집 앞 대여점 구석에 있던 것을 우연히 찾아 보고 있다. 그리고 보면서 계속 생각난 만화가 있으니, 야마구치 카쓰미 작 'My Favorite bike' 다. 모터 바이크를 다루는 만화인데, 그 쪽에서도 흔치 않게 각 바이크에 대한 옴니버스 스토리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그 쪽도 재미있으니 관심있다면 꼭 찾아보길 권한다.


3. 나스 - 안달루시아의 여름, 수트케이스의 철새. 코사카 키타로 작.

 오늘 소개하는 작품들 중 유일한 에니메이션. 짤막한 단편으로 2편까지 나왔으며 3편은 계획 중이라 한다. 쓱 봐도 어디서 본 그림체인 것 같았는데, 지브리 출신의 감독이 만든 작품이다. 게다가 지브리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일본과는 별 관계가 없는 배경에서[각주:1] 일본이 아니더라도 가능한 이야기와 전개가 펼쳐진다. 프로 로드 싸이클링을 다루고 있지만 그것이 주제가 아니며 관계, 추억 등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게다가 스토리텔링이나 극의 장치들도 굉장히 멋스러워, 보면서 계속 '붉은 돼지'가 생각났다. 애니메이션이기에 가능한 역동적인 주행 묘사도 좋다. 비단 자덕이 아니더라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니 기회가 되면 꼭 보길 권한다. 



4. 겁쟁이 페달. 와타나베 와타루 작.

 최근 일본 판매 순위 상위에 늘 오르며 잘 나가고 있는 작품. 다케히코 이노우에 작 '슬램덩크' 이후 세워진 스포츠 만화의 도식을 잘 따르고 있으며, 격정적인 묘사와 안정적인 스토리 전개를 보이기에 '자전거'란 주제가 가지는 폐쇄성을 넘어설 수 있었던 것 같다. 다만 말한 바대로 보면서 슬램덩크를 계속 상기시키게 되었으니, 이런 류 만화에 자주 등장하는 서태웅 케릭터는 물론이요, 강백호, 채치수, 변덕규, 윤대협, 정대만도 발견할 수 있었다. 게다가 묘사의 범위도 슬램덩크와 많이 흡사하니, 주인공뿐만 아니라 다양한 주변인물들에게 스토리를 심어주며, 각자의 행동에 대한 당위성을 부여하고 있다. 또 사변하면서도 점층적인 스토리 전개도 슬램덩크의 그것과 흡사하다.

 이렇듯 다방면에서 슬램덩크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만 작품의 질적인 면에서 저열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밀도있고 자연스러운 스토리 전개가 좋고, 열혈물을 떠올릴 수 있는 격정적인 묘사도 좋다. 그림체가 좋다고는 말 못하겠다만 과장과 인물 디포르메가 좋아 맛있게 읽힌다. 찰나에 대한 묘사가 깊어 전개가 늘어지고는 있다만 앞으로의 진행이 기대되는 작품.


5. 스피드 도둑. 마사히토 소다 작.


 제법 된 만화이며 자전거 만화의 원류가 될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앞에서 말한 겁쟁이 페달이 슬램덩크가 새운 도식을 따르는 것과는 달리 80년대~90년대 초반의 만화풍을 따르기에 열혈, 근성물에 가깝다. 배경이나 스토리 뿐만 아니라 케릭터들도 오래된, 하지만 고풍스러운 클리세를 따르고 있기에 오늘날의 그 것과 비견하는 맛이 쏠쏠하다. 그 외에 클라이머, 스프린터, 에이스의 케릭터를 나누고 각각의 특징을 적용시키는 점[각주:2] 등 후대 자전거 만화에 영향을 끼친 요소들이 눈에 뜨인다. 만화가 그려지던 당대에는 최신이었겠지만 지금은 빈티지가 된 자전거나 컴포넌트, 의류들을 보는 재미도 좋다. 그림체가 지금 보기에는 세련된 맛이 없고, 스토리텔링도 고색창연한 감이 있어 쉬이 추천하기는 어렵다만 자덕이라면 기꺼이 즐겁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내 마음속의 자전거'와 마찬가지로 구하기는 좀 어렵다.
 
  1. 2편의 장소는 일본이긴 하다만 여기에서는 비단 공간만에 한정하는 것이 아닌 극의 총체적 배경을 말한다. [본문으로]
  2. 이 점은 결국 프로 로드 싸이클링에 기인한 요소겠지만 단순히 경주를 위한 롤에만 적용시키는 것이 아닌, 케릭터 설정 전반에 확장시킨다는 점은 만화를 위한 특수 변용으로 볼 수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