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렌슨 부츠들 / Grenson Boots

2011. 10. 24. 03:14옷/옷장


그렌슨(Grenson)의 국내 인지도는 부족하지만 알고 보면 1886년부터 공장제 구두를 만들고 있는 영국 구두계의 베테랑이다. 게다가 굿이어 웰트의 원조집이다. 이 정도면 콧대가 쌜 법도 하지만, 고품질 고가와 저품질 저가로 나뉘는 부츠 시장에서 그렌슨은 영국풍의 근사한 풍모를 유지하면서 적절한 품질과 적절한 가격대를 유지해 좋은 반향을 얻어 왔다. 그리고 올 해에는 국내에서도 그 적절한 벨런스로 인해 제법 인기를 얻었다. 심지어 내게도 두 양반이나 바쁜 걸음으로 다녀가셨으니 말이다.



이건 Sharp 모델의 특주형. 지금은 판매 중지 상태다. 보통 샤프 모델은 풀 브로그 윙팁 컨트리 부츠에 크레페 솔이나 레더 솔이 달리는데 반해 이건 다이나이트 솔[각주:1]이 달려 있다. 착화감은 딱 적절한 정도다. 단단하다. 갑피는 누벅[각주:2]인데, 그렌슨의 구두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문제인 '가죽이 얇고 딱딱하다' 란 점 때문에 아주 만족스럽진 않지만 나쁜 수준은 아니다. 그 외에 누벅이다 보니 얼룩이 잘 생기는 문제도 있지만 부츠인데 뭐 어때. 아무튼 빨간 겉창과 파란 갑피, 그리고 가로지르는 하얀 웰트선의 조화가 프랑스 국기처럼 알록달록 예쁘다.

사실 보다 남성미 넘치고 폭넓은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라스트는 아래의 프레드 타입이지만, 뭉툭한 윙팁은 이미 꽤 많은 사람들이 신고 다니고 있는데다 트리커즈의 4497 라스트와 비슷해 보이기에 그 쪽 구매도 염두하고 있는 사정 상 보다 얇게 뻗은 샤프를 골랐다. 컨트리 부츠에 안 어울릴 듯 보이는 '샤프'함이 배가된 라스트지만, 의외로 꽤 괜찮다. 게다가 포멀한 수트에 매치했을 때 컨트리 부츠보다 자연스럽고 우아해보이는 장점까지 있다. 

잘 신어보려 했는데 이준동이 데이트 할 때 빌려가 마음에 든다고 그냥 사버렸다. 게다가 슈트리는 덤으로 가져가 버렸다. 죽 쒀서 개 줬다. 개준동.



이건 Fred V[각주:3]. 풀 브로그 윙팁에 스톰 웰트를 쓴, 정통 컨트리 부츠에 가까운 외형이지만 비브람 솔을 써 경쾌함을 더했다. 보시다시피 참 예쁘지만 '제대로 된 컨트리 부츠'계에선 최저가군에 속하는 물건이다 보니 올 해 대한민국에서 참 많이 팔렸다. 생긴 모양새가 아름답고가격은 소탈한데 착화감마저 준수하다. 팔방미인이다.

다만 앞서 말한 바 대로 그렌슨 제품들의 가죽맛이 좀 안좋다 보니 오래 신었을 때 멋진 풍모로 변신하길 기대하기엔 불안한 감이 있다. 컨트리 부츠는 주름이 잡히고 상처가 곳곳에 생겨야 매력적이건만, 가죽의 쫀득함이 떨어지는 그렌슨이 풍상을 겪으면 과연 어떤 결과에 도달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뭐 이러나 저러나 내 물건은 아니다. 전지수 선생님의 물건이다. 오더만 내가 진행했다.  



이건 덤. 페디웨어에서 주문하면 슈트리와 구두약을 준다[각주:4]. 둘 다 품질이 꽤 좋다. 특히 구두약은 바커의 제품이다. 다만 앞선 샤프는 페디웨어에서 주문한 것이 아니어서 이 것을 못 받았다. 결국 난 이것들이 없다. 두 켤레나 샀건만 이것들이 없다. 오늘 포스트도 슬프게 끝난다. 요즘엔 뭘 해도 슬프다.
  1. 다만 진짜 다이나이트 솔인지는 의문. 생긴 것은 영락없는 다이나이트지만 마킹이 다이나이트가 아닌 그렌슨이며 그렌슨이나 페디웨어 홈페이지에도 아무런 설명이 없다. [본문으로]
  2. Nubuck과 Suede는 비슷한 질감이지만 만들어지는 부위가 전혀 다르다. 둘 다 샌딩하여 기모를 만들어내긴 하지만 누벅은 가죽 겉쪽(은면)을 가공해 만들고, 스웨이드는 안쪽(육면)을 가공해 만든다. [본문으로]
  3. 비브람 솔이 쓰인 프레드는 뒤에 'V'가 붙는다. [본문으로]
  4. 넥타이도 주는데 병신같은 물건이라 생략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