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둥산에서 하룻밤을 보내다 불새를 만났다. 디즈니의 판타지아 시리즈

2011. 7. 28. 11:11잡문/이야기


 순항하던 디즈니사(社)는 도널드와 구피에 밀려 쇠락해가던 미키의 인기를 되살려보려 고민하다, 미키를 주연으로 한 슬랩스틱 코미디 단편의 제작을 시도합니다. 무성영화의 그 것처럼, 음악과 영상만으로 간명한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단편이지요. 그러던 중 음악을 맡은 지휘자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Leopold Stokowski)가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이런 음악영상 단편들을 모아 하나의 극장판 영화로 만들어보자고 말이죠. 아이디어는 결과물에 대비해 본다면 '의외로' 구체화되어 갔습니다. 드디어 1940년, 2년간 1000명이 넘는 스탭이 참여하여 300만달러를 써 가며(1940년입니다) 100만장이 넘는 원화를 그려 만든 작품. 'Fantasia'가 개봉합니다. 월트 디즈니의 역사에서 가장 전위적(Avant-Garde)이면서도 고전적인, 말 그대로 '환상적인' 작품이 탄생했습니다.

 여기까지는 개나 소나 다 쓸 수 있기에 촌충같은 저도 쓰는 개관이고, 중요한 것은 이하의 영상입니다. 1940년작 판타지아의 마지막 단락 'Night on Bald Mountain-Ave Maria' 입니다. 조금 길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즐겨 보시면 절대 후회하시지 않을 겁니다.


 우미관에서 김두한이 날아다닐 무렵(아직 심영 선생께서 고자가 되기 전입니다) 태평양 반대편에서는 이런 작품이 나왔습니다. '스토리텔링 뮤직비디오'의 원조라고 볼 수 있을까요?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어찌보면 오파츠(OOParts.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유물)로도 보입니다. 연출, 편곡, 영상미 모두 뛰어납니다. 게다가 감각은 지극히 전위적이지요. 어린 시절 미국에 다녀오신 옆집 아주머니가 사 온 비디오를 보며 너무 무서워 바지를 적셔버린 마귀 대왕의 박력은 지금 보아도 충분히 무시무시합니다. 글 다 쓰고 바지나 갈아입고 와야 겠습니다.

 원곡은 러시아의 작곡가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Modest Petrovich Mussorgsky)의 '민둥산에서 하룻밤'과 프란쯔 슈베르트(Fanz Schubert)의 '아베 마리아'입니다. 무소르그스키는 동네 유명한 민둥산을 보며 느낀 소름끼치는 인상을 토대로 곡을 만들었고, 슈베르트는 모성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을 신실한 신앙으로 담아 유려한 곡조를 완성했지요. 이 아주 동떨어진 두 곡은, 영상이 가진 기의를 충분히 표출할 수 있도록 멋지게 조합(믹싱?)됬습니다. 그리고 영상도 음악이 주는 인상을 제대로 증폭시킵니다. 올바른 상호보완, 상부상조의 예가 여기 있습니다. 바로 '압도적인 작품' 이죠.

 다만 그 완성도에서 기념비적 작품이었던 판타지아는 너무나 전위적인 스타일로 인해 흥행에 참패했고, 냉철한 사업가였던 월트 디즈니는 이후 철저히 계산된 상업 만화영화를 계속 출시하며 디즈니 왕국을 불려 나갑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대중들의 안목이 변하면서 판타지아는 재평가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대중들에게 '디즈니 최고의 명작' 으로 기억되게 됩니다. 이에 고무된 디즈니는 새천년을 맞이하는 이정표에서 또 한 번의 환상을 현실화시킵니다. 1940년작 판타지아의 컨셉트를 그대로 이어 온 작품, '판타지아 2000'입니다. 무려 60년만의 후속작이 등장합니다.


 2000년작 판타지아의 마지막 단락인 'Firebird' 입니다. 원곡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가 원시주의적 작곡을 하던 시기에만든 발레곡 '불새(Firebird suite)' 입니다. 원곡이 가진 격렬함과 타격감도 대단하지만, 영상을 위한 편곡도 대단히 멋집니다. 불새가 태동하는 장면에서는 지금도 깜짝깜짝 놀랍니다. 물론 앞선 'Night on bald Mountain-Ave Maria'와 마찬가지로, 영상은 훌륭하게 음악을 보조하고 있습니다. 역시나 적절한 상부상조지요. 일전에 이 곡의 발레 공연을 본 적이 있는데, 이 영상을 본 뒤 발레를 보았기에 제법 심심하게 느껴졌습니다. 제겐 이 영상이 이 곡에 대한 최선의 해석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도 많이 망설였습니다. 뭐 저작권 따위로 망설인 것이 아니라, 이 압도적이 영상들은 유튜브 따위로 걸어둔다는 점에서 망설여졌습니다. 일단 극장에서 관람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현 시점에서는 불가능하오니, DVD 및 블루레이판을 감상해보시길 깊게 추천합니다. 제대로 된 소스와 환경으로 '선과 악의 대결'과 '생명과 죽음의 대결'을 감상하면 그 감동과 여운은 정말 깊을 것입니다. 비단 이 두 단락 뿐만이 아니더라도, 다채로운 음악과 영상의 조우들이 이 두 판타지아 작품에는 담겨 있습니다. 이런 것은 사야 합니다. 술먹지 말고 이거 사 보세요. 술을 내일 먹어도 되잖아요. 



본문은 집단 블로그 미디어 Publicsounds.com 을 위해 작성한 글입니다. 얼마전부터 퍼블릭사운즈와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쇼프아스드프흐즈크르닷컴(이 블로그입니다)과는 다른 느낌의 글을 '간간히' 연재하고 있습니다. 제 블로그 흥행이야 워낙 형편없다 보니 이제는 손놓고 살지만, 앞으로 퍼블릭사운즈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또 퍼블릭사운즈에서는 필진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재능있고 역량있고 쿨하고 핫한 분들의 많은 도움 부탁드립니다. 다만 급여는 없ㅋ엉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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