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그쉽

2011. 2. 7. 10:01옷/이야기


 Flagship. 선단에서 기를 계양하는 배, 즉 가장 전위에 서는 배를 의미한다. 유통에 관련해서 사전적으로는 주력 상품을 의미하는데 아무래도 가장 많은 매출을 올려주는 제품보다는 그 브랜드가 제시할 수 있는 최상의 제품을 지칭하는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엔트리 급과 반대되는 느낌 정도?

 이번 겨울에 눈여겨 보았던 스트릿 브랜드 제품들을 몇가지 남겨둔다. 각 브랜드들이 정말 작심하고 만든 티가 나는 물건들이다.


Nude Bones Napoleon Stadium Jacket

 영 쌔보이는 옷만 만들어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게 누드본즈(http://www.nudebones.co.kr/)인데 이건 내게도 근사하게 보였다. 사실 쥐스토코르식 자수야 디올 옴므에서 06년인가에 시도해 반향을 일으킨 적 있는[각주:1], 게다가 물론 그전에도 여러 디자이너가 시도한 적 있는 디테일이다 보니 아주 창의적이라 볼 수는 없지만, 나름 어렵고 쌘 디테일을 배색과 조합으로 적당한 벨런스를 찾게 했다. 원톤으로 질감차만 주는 것, 그리고 캐주얼한 옷에 드레시한 디테일을 더하는 것.
 이외의 디자인 디테일도 흥미롭다. 진동을 깊게 파고 몸판을 슬림하게 하여 경쾌하게 보이게 한, 핏에 신경을 쓴 점이 매력적이고, 정석적인 시보리 칼라와 스냅 단추의 구성이 아닌 숄 칼라와 지퍼를 사용한 점도 괜찮은 시도다.

 비단 디자인의 측면뿐만 아니라 소재도 흡족하다. 앙고라와 울 혼방의 겉감에 사틴 안감이란 정석적 구성에 팔의 배색은 소가죽[각주:2]이다. 개인적으로는 낭창낭창한 양가죽이나 Calf 소가죽이 보다 어울리지 않았을까 싶지만 이정도만 해도 지당한 선택이다. 

 가격은 32 만원. 조금 비싼 감이 있긴 하나 들어간 공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다. 시장이 보장되어 있지 않은 물건인데 조금은 더 받아도 된다. 아직 전 사이즈 판매중이다.


VIVASTUDIO Snorkel Down Jacket

 디자인 참 잘하는 비바스튜디오(http://www.vivastudio.co.kr)의 작품. 어덜트 캐주얼이 스트릿 씬의 대세이긴 하다만 이 정도면 누구나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디자인이다. 배색이나 장식같은 디테일을 배제시켜 경박한 느낌을 주지 않는, 그러면서도 색과 실루엣과 같은 감각적인 부분에서 젊어 칙칙해 보이지 않는게 참 절묘하다. 아노락 점퍼는 자칫 정신을 빼면 '시장통 생선가계 아저씨 간지' 나 '교실을 등정하는 패딩 고등학생' 으로 빠질 수 있는데 이건 그럴 일은 없을 듯.
 이런 디자인적 성취는 소재의 선정과도 무관하지 않은데, 우선 겉감에서 광택있는 합성소재류를 택한 것이 아닌, 매트한 면을 택한 것이 좋았고, 토끼털을 후드에 감아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 것도 적절한 선택으로 읽혀진다. 큐프라를 사용한 안감과 다운 90%의 충전제도 보이진 않지만 옷에 등급을 높혀주는 요소. 

 가격은 30만원. 한겨울 방한의 실용적인 목적으로 들이기에 나쁘지 않은 가격이다. 지금은 모두 솔드 아웃된 상태.


Raclique Peacoat Navy

 라클리크(http://mangbae.godo.co.kr) 의 작품이고 이 포스트를 만들게끔 한 물건. 보자마자 "이건 디자이너가 자기 입을려고 만들었네" 싶었다. 디자인이야 피코트가 거기서 거기니까 그러려니 하고, 실루엣이야 안입어봐서 모르겠다만 들어간 소재들이 예사롭지 않다. 일단 겉감이 헤리스 트위드고, 안칼라와 손목 스트랩에 배색으로[각주:3] 소가죽을 더했으며, 단추로 고전적인 위빙 소가죽 싸개 단추를 썼다. 스트릿 계열로 분류되는 브랜드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구성이며 어디 맨체스터에 있는 테일러가 만들었다고 해도 그럴싸할 것이다. 

 앞에서 실루엣은 안입어봐 모른다고 적긴 했다만 모델 피팅 사진만 보면 핏도 근사해 보인다. 요즘 피코트들은 타이트하게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건 적당히 풀어주는, 직선에 가까운 실루엣이여서 야하지도 않고 오버코트로의 활용성도 좋아 보인다.   

 다만 가격도 작심하고 만든 티가 나니 무려 65만원. 도메스틱 스트릿 브랜드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가격이다. 소재나 디자인 완성도에 대비하면 그다지 나쁠 것은 없는 가격이긴 하나 브랜드 인지도가 낮은 스트릿 계열의 특성상 그다지 쉽게 받아들여질 것 같지는 않다. 


Liful Leather Stadium Jacket 

 스타디움 재킷의 선두였고 매년 새로운 작품들을 제시하고 있는 라이풀(http://www.wherehouse.co.kr)의 올해 플래그 쉽. 기본적인 외양은 크게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이나, 소재와 테크닉에서 주목할만한 요소들이 있었다. 

 소재면부터 살펴보면, 우선 베지터블 가공한 양가죽을 전체 소재로 활용한 점이 눈에 띄인다. 베지터블 가공을 거친 양가죽은 눈에 보이는 질감이 자연스럽고 수더분하니 단순 염색만 한 양가죽보다 편안하게 다가온다. 게다가 가공의 효과가 확연히 들어나기에 고급스러운 느낌도 줄 수 있다. 암만 어덜트 캐주얼이 대세라고는 하나 쌘 인상의 옷들이 주류인 스트릿 씬에서 이런 소재를 사용한 옷은 이채롭다. 게다가 이런 겉감에 대비되는 사틴[각주:4] 안감을 사용하여 질감 대비의 재미와 고급스러운 인상을 더했다.

 테크닉의 면에서는 일단 입체 패턴이라는 점이 눈에 뜨인다. 일반적인 스트릿 씬 브랜드들의 옷들이 구비된 원형 패턴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약간의 피팅 조절만을 거쳐 옷을 완성하는데 반해 이건 패턴을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설계하였다. 진짜로 입체 제단으로 한 것인지와 실효성은 입어봐야만 알기에 그 가치를 섯불리 판단하기엔 무리가 있으나 시도에 의의를 두어 좋게 평가한다.

 가격은 39 만원. 스타디움 재킷치고는 비싼 감이 있어 발매 초기에 커뮤니티들에서 약간의 논란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풀 레더 재킷에 이 정도 가격은 합리적인 책정이라 생각한다. 
  1. 칸예 웨스트도 입었으니까. 그나저나 개인적으론 참 안어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본문으로]
  2. Steer hide. 거세우 가죽. 3~6개월에 거세하여 2년 이상 사육한 식우의 가죽. 조건만 보면 질나쁜 가죽일 것 같지만 등급상 놓고 보면 나름 준수한 가죽이다. [본문으로]
  3. 말그대로 배색이다. 반대색인 노란색이 쓰였다. [본문으로]
  4. 공단. 구로공단 말고 貢緞. 본래는 실크로 직조하나 오늘날에는 나일론등의 합성소재로도 짠다. 본작에 쓰인 것은 브로셔에 표기가 안되어 있어 천연인지 합성인지 모르겠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