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GQ 다이어리(2009년 12월호 별책부록)

2009. 12. 3. 20:38잡문/이야기


 매년 연말이 되면 GQ에선 이런 날선 선물을 준다.  작년 물건도 그랬지만 올해도 담백하지만 세련됬고, 섬세하지만 중후하다.  단아한 남자의 물건이 가져야 할 덕목들을 지키고 있는데 GQ가 지향하는 미학적 문법을 따르기에 그러리라.

 올해의 디자인은 작년의 방식을 따르고 있다.  그리고 더 이상 더하거나 빼거나 조정할 것은 내가 게을러서 그렇겠지만 눈에 치이지 않는다.  이 정도면 된다.  그리고 잡지 부록이 이 정도를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작년에 받는 것으로 1년 동안 참 만족스럽게 사용했고 좋은 버릇도 생겼다.  이 정도의 긍정적 효력이라면 잡지 부록으로서 대단한 것 아닌가?

 잡지 부록이 필연적으로 당면해야 하는 문제가 바로 스폰서 쉽과 그것의 지배력이다.  그리고 그건 이 물건도 마찬가지다.  하드커버 양장의 제법 든든한 물건을 만들기 위해서는 스폰서와 임시특가가 필요하긴 할꺼다.  전전년 파트너는 조르지오 아르마니 퍼퓸, 작년은 랩시리즈, 올해는 씨어리가 맡았는데, 그래도 이 다이어리에선 광고들도 적당한 수준에 그쳐준다.  초반의 몇장에만 광고를 할애하고 있으며 이후 본면에선 각장의 모서리에 작은 로고만을 드러내고 있다.  이만해도 참 좋은 광고수단 아닌가?  적어도 이 다이어리의 주인은 일년동안 그 광고를 접하면서 살 것 아니겠는가.  다행히 이런 생각을 광고주들도 해주었는지, 아니면 이충걸의 비타협적인 태도가 작용했는지 PPL은 적당한 수준에서 그친다.


 명확하게 말하자면 다이어리라고 부르기에는 약간의 문제가 있는 구성이다.  년, 월, 일 단위로 나누어져 있는 플레너에 가깝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능적인 면에서 가방에 넣고 다니는 다이어리와는 다른 노선에 있다.  크기도 클 뿐더러 무겁기도 하다.  아무리 봐도 이건 책상에 남겨두고 사용하는 용도에 적합하다.  하긴 요즘엔 재빠른 블랙베리도 있고 즐거운 몰스킨도 있지 않은가.  이건 생긴 만큼이나 무겁게 사용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게 매력이기도 하다.


 속지들은 군더더기는 생략하고 명확한 시안성을 확보한, 제법 촉감 괜찮은 종이로 구성되어 있다.  원래 다이어리는 무언가를 기록하기 위한 것이지 무언가를 읽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남성식 합리주의는 이 다이어리의 기조에 첨예하게 담겨있다. 


 년 단위 구획에선 말 그대로 대략적인 개요를, 월단위 구획에서 중요한 계획들의 기조를, 그리고 7일 한 묶음으로 구성된 주단위 구획에선 일상의 세밀한 순간들을 계획한다.  마치 '종속강목' 같은 체계로 명확하게 구성된 체계가 있다.  앞에서 말한 바 대로 이거면 됬고, 또 앞에서 말한 바 대로 이건 남자의 물건이다. 


 작년판에 비해 사용체계의 형식면에서 약간의 변화가 있긴 있다.  사진에서 윗쪽에 굽혀진 편이 09년판이고 아래에 있는 쪽이 10년판이다.  차이가 느껴지는가?  작년판은 행과 행 사이의 줄간격이 너무 좁아 글씨가 작아지고 쓰기 어려워지는 단점이 있었다.  올해판에선 이 점을 어찌 그리 잘 알고 간격을 1.2배정도 늘려놨다.  이런 자랑하지 않지만 신중한 배려가 참 고맙다.

 간단명료하게 글을 마치겠다.  만약 정말 싫다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잡지를 버리더라도 12월의 GQ는 살만한다.  내년을 준비하는 당신에게 참 유익한 선물이 될 것이다.  12월호는 평소보다 조금 비싸지만, 7800원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