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살게 하는가

2011. 2. 22. 12:54잡문/일기는 일기장에



 한참동안 정신을 놓고 지내다 보니, 눈떠보니 두 달을 놀았네. 남은 것은 카드 내역서와 살. 잃은 것은 나머지 모든 것. 로마가 나태하다 망했다는데 전국민의 반정도만 나같다면 충분히 그 나라가 망할 것이다.

 담배나 피우고 술이나 먹으며 욕이나 하다 어느날 '인생 다 무너졌구나' 를 깨닫는 날이 오기를 소망했다. 하고 싶은 것만 하다가 죽는, 나름 소박한 소망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이게 제법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담배를 피우려면 건강한 폐와 이천 오백원이 있어야 하고, 술을 마시려면 튼튼한 이장과 이만원이 있어야 하고, 욕을 할려면 담배와 술이 있어야 했다. 결론은 누구나 토로하는 만악의 근원, 바로 '돈' 인데 이건 다들 아시다시피 하기 싫은 것을 해야지만 얻을 수 있는 것. 이 명석판명한 진리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

 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제는 제법 입장이 달라졌으니, 어느덧 내일 일정에 졸업식이 있다. 이전같으면 '학생' 이란 타이틀이 있다보니 무슨 일을 구하더라도 단순 '부업' 이었지만, 이제는 이름만으로 묵직한 '전업' 을 구해야 한다. 간간히 이력서를 찔러보지만 이는 마치 병속에 담아 바다에 던지는 편지와 같아서, 던질 때마다 류현진같은 마음이지만 늘 회신이 없더라. 모두들 알고 있는 사실이 있으니, 그 누군가가 겪는 일이 언젠가는 내 일이 될 가능성은 열려있다는 것. 텔리에서만 나오던 명대사 '장기화된 경기 침체로 인한 실업자 증가' 에 참여하는 인원이 되고 보니 나름 기분이 삼삼하다. 늘 비주류로 살았었는데 이번에는 주류가 되었구나. 

 그렇다고 별 수 있겠나. 열심히 병을 던질 뿐이지. 직업을 얻은 사람들은 그 이전에 이력서를 냈다는, 뭔가 이상한 연역적 추리만 믿을 뿐. 대낮에 자다가 꾼 꿈속에선 내게 '사장님의 전투력을 감별할 수 있는' 스카우트가 있었다. 그래서 베지터와 취업이 됬다는 결말에 도달했는데 이런 개꿈을 계속 꾸려면 일을 해야겠지. 뭐 별 수 있나.

 오늘은 마지막 남은 이만원으로 담배나 피우고 술이나 마셔며 욕이나 해야겠다. 밑바닥까지 도달하면, 빛이 없는 곳까지 내려가면 다시 절실히 빛을 갈구하게 되겠지. 늘 그래왔듯 그렇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