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by 김서룡 싱글 브레스트 피크드 라펠 재킷 / K by 김서룡 Single Breasted Peaked Lapel Jacket

2012. 2. 10. 11:09옷/옷장



K by 김서룡 Single Breasted Peaked Lapel Jacket.  48사이즈. 실치수는 46에 준한다.
실측 단면 사이즈(Cm) - 어께 43, 총장 71, 가슴 47, 팔길이 63. 

김서룡 선생님의 세컨 라인인 'K by 김서룡'(http://www.k-kline.com/)의 제품. 2버튼, 피크드 라펠, 사이드 벤트로 만들어졌다.  

특별한 기교나 더함 없이 기본적인 문법을 따르고 있다. 튀는 옷이 아니다 보니, 확실히 이 옷은 걸어두고 바라보는 것보다 입었을 때 그 참맛을 느낄 수 있다. 수사로는 '우아하다' 가 적합한데, 현대적 감성이지만 경박하지 않고 멋스럽다. 

실루엣이 참 좋다. 좁지만 작지 않아 유려한 곡선이 살아있다. 남자 재킷의 경우 직선의 강건한 멋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건 완만한 곡선으로 몸에 감긴다. 특히 가슴-허리-엉덩이로 이어지는 몸판의 선이 참 유려하다. 

총장은 요즘 동향과는 달리 충분히 길어 엉덩이를 충분히 덮으면서 전체적인 선을 이어나가고, 고지선은 평균보다 약간만 더 깊어 고루하지 않으면서 경솔하지 않다. 사실 이런 해설들보다 입은 사진을 보여주는 것이 좋겠지만 옷걸이가 나빠 첨부하지 못했다. 사이트의 모델 사진을 보시라.

아무튼 이 옷은 '선 맛' 이 참 좋다. 이 글은 여기까지만 쓰고 말아도 될 정도다. 사실 이후의 본문은 사족에 무한수렴 한다. 


겉감은 혼방없는 울. 광택없이 담담하다. 피크드 라펠과 네이비 컬러인 재킷에 광택이 들어가면 이미지가 너무 강해지기에, 푸석한 원단은 중화제로 적당하다. 다만 일반적인 양복지처럼 바삭바삭하고 직조가 조밀한 것은 아니다. 낭창낭창하며 비교적 성기기에 강건함보단 부드러운 인상이 강하다. 즉, 전투복보단 일상에 적합한 편이다.  

안감은 폴리에스테르인데, 큰 차이는 아니나 큐프라같은 재생섬유에 반해 그 촉감과 기능성에서 못하다 보니 아쉽다. 물론 이유있는 선정이겠지만, 실크까지는 아니더라도 다른 대안을 택하는 것은 어땠을까 싶다.

소매의 버튼의 개,폐가 가능하다. 패턴을 다시 설계해야 하며, 공정이 번거로워지며, 오늘날엔 상징적인 의미만이 남아버린 디테일이기에 이 가격대의 제품들에선 생략하는 경우가 많으나 진정성있게 다가섰다는 점이 참 좋다. 게다가 현실적인 기능면에서도 가치가 있으니, 원단으로 보아 이 옷은 춘추복이기에 더울 때는 소매를 걷기 쉽다는 점이 있다. 개폐 가능한 소매는 원래 그런 목적이다.

라펠의 플라워 홀이 생략되어 있다. 물론 의도된 바 이련만 재킷의 기본 구성에 들어가는 요소다 보니 두는 것이 좋았으리라 싶다. 이런 느낌의 옷이라면 소담한 꽃 한송이나 부토니에를 꽂고 다니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단추는 뿔단추. 가끔 이 가격대에도 반질반질한 플라스틱 단추를 쓰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경우 결국 꼴랑 단추 때문에 옷이 아무리 이뻐도 손이 안 간다. 부자재의 선정도 중요한 덕목이니, 이 재킷은 적절한 선택을 두었다.  촉감이 참 근사하다. 


총장이 충분히 긴 사이드 벤트여서 활동적으로 움직여도 흐트러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옷을 입고 부산스러워봐야 얼마나 부산스럽겠냐만.

안단과 안감의 경계가 약간 부실한 감이 있다.  바느질이 뜬다고 해야하나?  우는 곳이 있긴 있다. 싼 옷이라 보기엔 무리가 있고, 세컨 라인이지만 김서룡 선생님의 이름을 걸고 나오는 제품이니 만큼 이런 점은 분명 아쉽다.

이너 포켓은 고전적인 3단. 팬슬 포켓과 와치 포켓이 따로 달려있는 건 언제봐도 참 흐뭇하다(다만 사실 별 쓸모는 없다). 마지막으로 프린트가 아닌 마킹으로 된 이너 라벨은 괜히 수공예의 맛이 나 좋다. 나도 나중에 꼭 써먹어야지.



아마 3년쯤 된 것 같다. GQ를 읽다 김서룡 선생님이 세컨 라인을 연다는 토막기사를 읽었다. 부띠끄 위주로 운영하던 김서룡의 메인 라인과는 달리 인터넷 판매도 하고 가격도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대라기에 관심이 갔지만 빈한한 사정과 소탈한 기억력으로 인해 한참을 잊어버리고 살았다. 게다가 강건한, 그리고 정교한 옷을 좋아했던 내게 실루엣의 우아함이 좋은 김서룡 선생님의 옷은 너무 심심해 보였다. 많은 옷을 본 것은 아니지만, 김서룡 선생님의 옷은 아무래도 전체적인 분위기를 중시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 벌만 두고 보아도 멋진 옷을 좋아했던 내게 그런 분위기는 어렵기만 했다.

한참을 잊어버리고 살다가 우연한 기회로 이 재킷을 만나게 되었다. 취향이 변한 것인지 눈이 트인 것인지, 이제는 이런 옷도 썩 근사하게 느껴진다. 그리 빛나지는 않지만 어디에나 두루 쓰일 옷이고, 대충 걸쳐도 충분히 우아하다. 내 옷이 아니기에 섬세한 감상은 못 얻었지만 쓱 봐도 탐나는 물건이다.  

취향이 변하는 걸까 아니면 그저 이 옷이 좋은 것일까? 어찌 되었건 고민할 문제까지는 아니다. 이러나 저러나 나쁜 건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