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스타브 쿠르베 / Gustave Courbet

2011. 7. 30. 23:04잡문/이야기



만남 혹은 "안녕하쇼 쿠르베씨"(La Rencontre, ou Bonjour Monsieur Courbet)(1854). 귀스타브 쿠르베(Jean-Désiré Gustave Courbet)

 "내키는 것 그 자체를 담자"가 모토였던, 회화에 지극히 단순한 방법으로 접근하려 했던 쿠르베지만 당대에는 꽤 충격적인 시도였습니다. 그 이전의 미술들을 대개 안 그랬거든요. 덕분에 오늘날 쿠르베는 회화가 고전에서 근대로 넘어가던 간절기를 연 사람으로 높게 대접받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위의 그림은 우리나라 미술 교과서에도 나오지요.

 이전의 미술작품들이 특정한 메세지를 함유하고 있으며 시각적 인지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알레고리), 일종의 '문서'였다면(덕분에 도상학이란 학문도 있지요) 쿠르베가 활동하던 시기의 작품들은 시각과 인상 그 자체에 집중합니다. 영속성을 가지길 포기하고 순간의 인상에 집중한 모네라던지, 대상보다 대상으로 부터 받은 인상에 집중한 고흐 등이 그렇지요.

 쿠르베는 앞서 말씀드린 바 대로 그림에서 알레고리의 배제를 시도했습니다. 그림이란 기표에 부여된 기의가 작가의 주관이나 메세지가 아닌, 기표와 동일해지길 꿈꾸었지요. 그가 그린 그림에는 자연, 정물, 인물 등 다양한 대상들을 담기지만 예쁘게 꾸며지거나 어떤 의미가 담겨지지 않고, 즉 작가의 변용 없이 그저 보이는 그대로 그려진다는 공통점을 가집니다. 말 그대로 '사진같은 그림'입니다(원조 하이퍼리얼리즘?). 그리고 자기 스스로 자신의 장르를 '사실주의(Realism)'이라 칭합니다. 파리 만국박람회가 계최되는 동안 그는 옆에 게딱지만한 무허가 부스를 열고 '사실주의관'이라 간판을 답니다. 


하얀 스타킹 여인(Woman with White Stockings)(1861)

  이 "보이는대로 그리자" 란 모토는 기성 회화의 체계, 관습, 형식에서 탈피한, 자유분방한 그림이 탄생하는데도 기여합니다. 미, 추를 구분하여 강조하거나 배제하지 않고, 안 쓰여지던 투시나 구도로 접근하며, 무의미한 내용들이 그림에 등장합니다. 재미있게도 참 이율배반적입니다. 결국 쿠르베의 그림은 극히 주관적이게 됩니다. 쿠르베가 본 관경이 그대로 그림이 되니 말이죠. 작가가 부여할 수 있는 이념이나 메세지 등의 기의를 배제하고 그린 그림이 결국 아주 주관적이게 되니 말이죠.


사과꽃 가지(Branch of Apple Blossoms)(1871)


푸르동과 여식들(Proudhon et ses Enfants)(1865)

 잠시 그림 바깥으로 나갈께요. 이따가도 또 그래야 하니 몸 좀 풀어두죠. 현실적이면서 자유로운 그림을 그린 쿠르베는 생활에서도 그 노선을 이어갔습니다. 하긴 당대에는 예술로 사회를 바꿀 수 있다란 의식이 오늘날보다 훨씬 크고 강하게 예술가들의 생각속에 자리잡고 있었으니까요. 쿠르베도 그랬었는지, 빠리꼬뮌에 적극 동참히였고 다양한 사상가들과 교류했으며, 나뽈레옹의 제국주의를 경멸하고,사회주의에 대한 실천적 지지를 이어갔지요. 바로 위의 그림의 모델이 '최초의 무정부주의자' 삐에르 조셉 프루동(Pierre Joseph Proudhon)과 그의 딸들입니다. 쿠르베는 그의 저서를 감명깊게 읽었고, 꾸준한 교류를 이어나갔다 합니다.

 아무튼 프루동은 현실적이면서 자유로운 삶을 이어가다 말년에 술독에 빠져 죽습니다. 꿈꾸던 사회의 시발이었던(Fuck it 아니에요)빠리꼬뮌이 좌절되고, 잘 팔리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기에 심각한 제정난을 겪던 그가 말년에 느낀 허무와 비탄은 대단했을겁니다.

 
누워있는 여인(Femme nue Couchée)(1862)

 그도 늘 똑같은 것만 하다가 지루함을 느꼈는지, 이렇게 낭만주의적인 그림도 그려보았더군요. 다만 티치아노나 보티첼리의 그림들과 구도는 흡사하지만 보시다시피 맛이 사뭇 다릅니다. 르네상스 식의 명료한 미를 추구하기 보단, 보여지는 그대로, 느껴지는 그대로에 보다 집중한 것이 보입니다. 그나저나 하얀 스타킹 페티쉬?

 
레슬링 선수들(the Wrestlers)(1853)

 이런 '빌리 해링턴 오 마이 숄더' 스러운 그림도 있습니다. 이거 카페 벽에 걸어두면 좋겠네요. 카페 위치는 이태원으로.


상처입은 남자(the Wounded Man)(1854)

 리얼리즘을 주창하긴 했지만 사실 그의 그림중에는 낭만이 감도는 그림이 많습니다. 이는 자연 그대로를 화폭으로 옴긴 것이 아닌, '보이는 것'을 그린 것이란 한계 때문일 것입니다. '본다' 라는 행위에는 사유와 관념이 계속 투영되게 되며, 그에 따라 행위가 이루어지고 조정되지요. 사실 사진마저도 이 한계를 벗어날 수 없으니, 결국 피사체에 찍는 사람이 설정한 의도가 부여되어(앵글이나 노출 등이 이에 따르는 것이지요)사진이 완성되지요. 결국 완전히 알레고리에서 벗어난, 완전히 객관적인 '미술'은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쭉 그럴 것 같구요.

 그나저나 이 양반도 대단한 나르시즘이 있었나 봅니다. 자기 얼굴을 그린 그림들을 보면 호리호리하고 약간의 퇴폐미를 겸비한 미남자로 그려 놓았는데 사진을 보면 살도 좀 있고 칙칙하게 생겼어요. 그림들 속 그는 저스티스의 자비에르 드 로즈네(Xavier de Rosnay)를 닮았는데 사진은 임채무...


파도(La Vague)(1866)
 
 이렇게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나 호쿠사이(葛飾北斎)를 생각나게 하는 그림도 있어요. 솔직히……. 이젠 뭐가 리얼리즘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자기가 리얼리즘이라고 했으니까 그러려니 합니다.


쥐라 산맥의 시냇물-급류(Stream in the Jura Mountains-the Torrent)(1873) 


폭풍이 지나간 후의 에트르타 절벽(La falaise d'Étretat après l'orage)(1870)

 그래도 이런 그림들은 '리얼리즘' 이란 명제에 기대하는 바를 충족시켜 주네요. 

 자 드디어 때가 왔습니다. 이제 제가 이 글을 적게 된 이유인 그림이 등장합니다. 
사실 앞선 글은 별 쓸모가 없습니다. 읽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이 그림 한 장을 위한 에피타이저에 불과합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미쉘 푸코가 한 때 소유했었고, 지금은 빠리 오르쉐 미술관에 당당하게 걸려있는 작품입니다. 


세상의 기원(L'origine du monde)(1866)

 바로 이 그림입니다. 방송통신심의의원회의 위원이자 고려대학교의 부교수인 박경신 선생님께서 개인 블로그에 올려 둔 이 그림이 최근에 큰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저는 예전에 "네이버에서 세상의 기원이라고 쳐 봐" 란 리플 때문에 알게 된 그림인데, 이렇게 오래간만에 만나니 감회가 남다르네요(?). 아무튼 이게 외설이냐 아니냐로 말이 많고, 직함이 심의의원이시며 야당 추천으로 된 박경신 선생님이기에 정쟁도구로도 쓰이고 있습니다.

 그림 이야기로 돌아가면, '리얼리즘'이란 명제를 아주 잘 표현하고 있는 그림이라 생각합니다. 쿠르베 이전의 누드화가 플라톤식 '이데아적인 미'를 추구했고, 쿠르베가 활동하던 시기의 그림들도 최소한 '미'는 있습니다. 심지어 마네(Eduard Manet)의 올랭피아(Olympia)도 천박하다고 당대 사람들에게 박해를 받았을 언정 보기에는 얘쁘지요. 하지만 여기에는 그게 없습니다. 보여지는 그대로 묘사했기에, 인체는 명료하지만 어떠한 미도 없습니다. 말 그대로 '여성의 벗은 모습' 에 그림은 한정합니다. 그리고 이 점이 리얼리즘의 본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앞에서 말한 바 대로, 작가가 이념, 메세지, 스토리를 부여하지 않은 그림이지요. 


 다시 바깥 이야기로 나갈께요. 일단 법상에는 "채모나 성기가 등장하면 안된다" 란 조항이 있겠지만 이 그림은 그런 법이 적용될 수 없는 영역에 있지요. 만약 해당이 된다면 다비드 상이나 보티첼리의 비너스도 우리는 볼 수 없겠지요. 그렇다면 이 그림의 쟁점은 이 것이 외설이냐 아니냐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 묘한 해석 문제를 앞선 리얼리즘 이야기대로 풀어볼께요. 쿠르베가 이렇게 그림을 그렸다는 점은 그림 그 자체에 외설적인 요소가 들어있다고 상정하기에 무리가 있음을 의미합니다. 즉, 포르노의 경우 기초부터 외설적인 목적을 두고 있기에 검열을 한다는게 당위성을 가질 수 있으나(개인적으로는 그것도 말이 안된다고 봅니다)이 경우에는 그런 목적이 설정되지 않았고, 그렇기에 외설적인 내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쿠르베 정도의 그림 실력이라면 얼마든지 더 '꼴리게'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 겁니다. 만약 그 것을 의도했다면 말이죠. 하지만 보시다시피 이 그림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고 포르노에 나름 해박한 제가 아무리 보아도 이건 그런 의도가 부여되어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외설이 아니겠지요. 간단하지요?

 요즘 이 그림 이름이 네이버의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 마네의 올랭피아가 살롱에 등장했을 때 어땠을지가 그려집니다. 지금은 명작이네 어쩌네 사람들이 추앙하며 많은 긍정적 해석 기의들이 부여되었지만, 당대에는 말 그대로 '포르노' 취급을 받았었지요. 아마 이 '세상의 기원'도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다만, 부디 우리나라 높은 분들의 문화적 소양이 올랭피아를 보던 당시의 파리 시민들과 같은 수준이 아니기를 기원합니다. 차라리 정쟁 도구이기에 일부로 쟁점화시키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만약 전자라면, 그건 진중권 선생님 말씀대로 너무 촌스러우니까요.



본문은 집단 블로그 미디어 Publicsounds.com 을 위해 작성한 글입니다. 얼마전부터 퍼블릭사운즈와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쇼프나 아스드프흐즈크르닷컴(이 블로그입니다)과는 다른 느낌의 글을 '간간히' 연재하고 있습니다. 제 블로그 흥행이야 워낙 형편없다 보니 이제는 손놓고 살지만, 앞으로 퍼블릭사운즈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또 퍼블릭사운즈에서는 필진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재능있고 역량있고 쿨하고 핫한 분들의 많은 도움 부탁드립니다. 다만 급여는 없ㅋ엉ㅋ.